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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2 장 1. 미제의 무력침공에 대처하여 -1950. 9. 17 중대조치―서울에서 만포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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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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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  2  장

미제의 무력침공을 물리치고 평화적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길에서

1. 미제의 무력침공에 대처하여

1950. 9. 17 중대조치―서울에서 만포까지

 

인민군대의 노도와 같은 반공격에 의하여 우리 조국강토에서 완전히 격멸될 위기에 부닥치게 된 미제는 1950년 9월 중순 태평양방면에 있는 륙해공군을 총동원하고 지중해함대의 일부와 제놈들의 추종국가군대까지 조선전선에 끌어들임으로써 적아간의 력량관계에서는 급격한 변동이 일어났다. 미제는 수백척의 함선과 약 1 000대의 비행기, 5만여명의 병력을 투입하여 대규모적인 인천상륙작전을 감행하였으며 이와 때를 같이하여 락동강전선에서도 대대적인 공격에로 이전하였다.

조성된 정세를 예리하게 통찰하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께서는 전쟁형세를 유리하게 전변시키기 위한 새로운 방침을 제시하시고 인민군대로 하여금 전략적인 일시적후퇴를 단행하도록 하시였다.

인민군대가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 오른 그때 급변하는 전국을 주시하며 긴장과 초조속에 날과 날을 보내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다름아닌 서울에 남아있던 남조선의 이전 정객들이였다.

사실 패주하는 리승만을 따라가지 않고 인민군대의 서울입성을 환영하였으며 서울에 남은 정계, 학계, 사회계인사들로 《정치인 및 국회의원협의회》를 결성하고 방송과 신문을 통해 미제와 리승만도당을 규탄하는 성명서, 담화, 호소문 등을 발표하여 전쟁승리를 위해 노력하였던 그들을 적들이 가만둘리 없다는것은 너무나도 자명한 일이였다. 그렇다고 하여 북으로 가자니 지난 시기 미제와 리승만반동통치기관에서 복무한 자기들을 북에서 어떻게 대해주겠는가 하는 생각이 그들의 발목을 잡았던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는 민족의 태양 일성장군님에 대한 신뢰가 깊이 자리잡고있었다. 자기들의 운명을 구원해줄 구세주는 김일성장군님뿐이시라는 믿음으로부터 그들모두는 북행을 결심하였다.

그러지 않아도 급변하는 군사정치정세와 관련하여 서울에 남아있는 여러 정계인사들의 신변안전문제를 두고 걱정하시던수령님께서는 그들의 북행결심소식을 반갑게 받아들이시였다.

그런데 당장 길이 막힐수도 있어 시간은 매우 촉박하였다.

이러한 때인 9월 17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내무상,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장은 갑자기 위대한 수령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수령님께서는 심중한 안색으로 직방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현재 서울에 있는 남조선의 이름있는 여러 애국적정계인사들이 우리 공화국정부를 지지하여 평양에 들어올 의사를 표명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소망대로 평양에 무사히 들어오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수령님께서는 미군병력이 인천에 상륙함으로써 서울일대에 위험한 정세가 조성되고 거기에 있는 남조선애국적정계인사들의 신변이 위태롭게 되였다고 하시면서 만일 우리가 남조선정계인사들을 그대로 방임해둔다면 그들이 적들에게서 박해를 받고 참살당할수도 있다고, 우리는 어떻게 하나 그들을 구원하고 보호해주어야 한다고 간곡히 말씀하시였다.

잠시 동안을 두시였던 그이께서는 김규식, 조소앙, 조완구, 최동오, 엄항섭선생을 비롯한 애국적인사들을 데려와야 하겠다고, 그들은 리승만괴뢰도당의 민족분렬책동을 반대하고 우리가 내놓은 남북협상방안을 지지하였으며 평양에서 소집된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가하여 회의를 성과적으로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고, 그들은 남북련석회의후 서울에 돌아가서도 련석회의결정을 지지하는 정당, 사회단체인사들로 구국통일전선을 형성하고 미군철거와 평화적조국통일방안을 실현하기 위하여 적극 활동하였다고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그들은 인민군대의 반공격이 개시되자 패주하는 적들을 따라간것이 아니라 서울에 남아서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이 범죄적인 전쟁을 도발한데 대하여 규탄하면서 공화국정부를 지지하는 성명과 담화도 발표하였다고 하시며 그들의 애국적소행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이번에 애국인사들을 평양으로 데려올 때 서울에 있는 안재홍, 오하영선생을 비롯하여 입북의사를 표명한 《국회》의원들과 리승만도당에게 체포투옥되였던 전기 《국회》의 소장파의원들도 다 데려와야 하겠다고, 그들은 한때 친미반공의 일선에서 나라와 민족을 배반하는 길을 걸었지만 지금은 리승만도당과 결별하고 나라의 평화적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애국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라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는 서울에 있는 남조선의 애국적정계인사들이 비록 우리와 정견은 다르지만 그들의 민족적량심과 애국적지조를 소중히 여기고있습니다. 지난날 반공일선에 섰던 사람이라 하더라도 오늘 나라와 민족을 위한 애국의 길에 나선다면 과거를 불문하고 손잡고 나가자는것이 우리의 일관한 립장입니다.》

수령님께서는 계속하여 내무상에게 이번에 입북하는 남조선정계인사들의 신변안전을 철저히 보장하여야 한다는 지시를 주시면서 남조선정계인사들이 평양으로 들어올 때 김규식, 조소앙, 안재홍선생과 같은 이름있는 정치인들과 년로한분들은 다 고급승용차를 리용하게 하여야 하겠다고, 적기의 폭격이 심하므로 자동차에 위장을 잘하고 밤에 떠나게 하며 예비자동차도 준비하여야 한다고 세심히 가르쳐주시였다.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 서기국장에게는 남조선정계인사들이 평양에 도착한 다음 그들에 대한 환영사업을 잘 조직해주며 입북하는 남조선정계인사들에게 애국적정치활동을 할수 있게 필요한 조건을 다 보장해주고 그들이 적의 폭격과 침해를 받지 않고 후방지대에서 안전하게 생활할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고 지시하시였다.

그이의 교시를 받아안는 일군들의 가슴에는 뜨거운것이 치밀어올랐다.

날로 험악해지는 군사정치정세로 하여 사실 남조선정객들의 운명문제에는 관심도 돌리지 못하였던 그들은 수령님의 숭고한 사랑과 의리의 세계에 크나큰 감격을 금치 못하며 장군님뜻대로 남조선정객들을 안전하게 후퇴시키겠다고 말씀드렸다.

그 다음날 수령님의 과업을 받은 일군들이 남조선정객들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들에게 수령님께서 하신 은정어린 말씀을 전달하였을 때 장내에서는 김일성장군님에 대한 감사와 경의의 탄성이 오래도록 그치지 않았다.

조소앙선생이 감격에 겨워 《이제는 림정계협상파를 비롯한 련공애국인사들이나 이남의 정치인 및 <국회>의원들도 모두가 살게 되였소.》라고 말하자 좌중에서는 김일성장군님은 정말 고마운분이십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신 곳으로 어서 갑시다. 그래야 우리들은 살수 있소.》라는 웨침들이 터져나왔다.

드디여 그날 저녁 9시경 남조선정객들이 모여있는 성북구 돈암동 전차종점부근 산기슭에 수령님께서 보내신 승용차들과 자동차들이 도착하였다. 김규식, 조소앙, 조완구, 엄항섭, 최동오, 오하영, 송호성, 김경배, 백상규 등 20명은 고급승용차 5대에, 나머지 20명은 군용자동차 2대에 나누어타고 승용차 1대와 자동차 1대를 예비차로 후위에 세운 남조선정객행렬이 평양을 향해 서울을 출발하였다.

그들일행이 평양에 도착하였을 때였다.

수령님께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일행이 무사히 왔는가, 앓는 사람은 없는가 일일이 알아보시고 년로한분들이 힘들겠으니 며칠간 쉬면서 로독을 풀라고 평양교외의 풍치좋은 곳에 숙소까지 친히 정해주시였다.

그해 추석날이였다. 그들은 미국놈들만 아니였다면 오늘은 햇곡식으로 성찬을 차려가지고 부모들의 산소를 찾았을것이라고 생각하며 호수에서 물고기를 낚으며 향수를 달래고있었다.

이때 자동차경적소리가 울리더니 승용차 한대와 화물자동차 한대가 그들의 숙소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린 일군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시여 왔다고 자기소개를 하고는 그이께서 자기를 보내시면서 서울에서 온 여러 선생들이 객지에서 추석을 맞으며 얼마나 마음이 허전하고 쓸쓸하겠는가고, 동무가 내대신 나가서 잘 위로해드리고 성의껏 연회도 차려주라고 말씀하시였다고 하자 그들의 가슴은 한없는 격정으로 설레이였다.

잠간사이에 식당은 연회장으로 되였다. 화물차에 싣고 온 갖가지 진수성찬이 상우에 올랐다. 각종 고기료리들과 물고기료리들, 고급당과류와 떡, 지짐, 과일들, 고급술, 담배에 이르기까지 없는것이 없었다.

수령님께서 친히 보내신 일군이 차례로 향기로운 인삼술을 부어주고나서 어서 들라고 권했지만 누구도 선뜻 잔에 손을 대지 못했다. 그들의 얼굴에서는 뜨거운 눈물이 소리없이 흐르고있었다.

눈물이란 격정의 상징이며 량심의 표상이다. 그날 그들이 흘린 눈물은 수령님께서 베푸시는 한없는 은덕과 은총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와 자애로운 그이의 품에 자신들의 운명을 맡긴 더없는 기쁨의 분출이였다.

김규식선생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어나서도 인차 말을 못하고 손수건으로 자꾸만 눈굽을 찍어냈다.

《여러분, 서울에 남아있었더라면 모두 미국놈들에게 총살당했을 우리들을 구원해주신 그 은덕만도 영원히 잊을수 없는데 국운이 존망지추에 이른 이 엄혹한 전화속에서 우리가 뭐라고…》

터져나오는 오열로 해서 그는 자주 말을 중단하였다.

그는 죄많은 자기에게 매를 들고 벌을 주어도 할 말이 없을진대 이렇듯 과분한 사랑을 부어주시니 그 은정 영세불망할것이라고 하면서 우리 운명의 구세주이신 김일성장군님의 만년장수를 기원하여 이 잔을 들자고 하였다.

최동오선생은 회억을 더듬으며 장군님께서 화청의숙에 다니실 때 자기 손으로 때식 한끼 변변히 대접하지 못한것이 늘 가슴에 걸려있었는데 이런 훌륭한 연회를 베풀어주시니 죄스러운 마음이 더해진다고 말하여 모두의 가슴을 울리였다.

그들은 서로 잔을 찧으며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존경과 신뢰와 흠모의 정을 담아 김일성장군 만세!》를 높이높이 불렀다.

하지만 그들은 이제 자기들의 인생에 또 어떤 행복한 앞날이 기다리고있는것인지 아직은 알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시 북행길에 오른 그들을 위하여 특별렬차를 내주시였고 기차길이 없는 곳에서는 승용차를 타고 가게 해주시였으며 그들이 들리는 마을들에서 따뜻한 환대와 륭숭한 대접을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남조선정객들이 목적지인 만포시(당시 만포군) 고개리에 도착한것은 10월 21일이였다. 거기에는 벌써 천험의 요새인 깊은 골안에 여러동의 숙소와 식당, 오락실, 진료소가 준비되여있었다.

숙소에 들어선 그들은 너무도 뜻밖이여서 한자리에 굳어졌다. 따뜻한 온돌방에는 두툼한 이불과 고급담요로부터 치솔과 바늘에 이르기까지 일체 생활필수품들이 다 갖추어져있었던것이다.

원래 그들이 들게 되여있는 숙소에는 침대를 놓기로 되여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아시게 된 수령님께서는 나이든분들에게는 침대보다 온돌방이 더 좋을것이라고 하시면서 장판을 잘하고 불을 뜨뜻이 때서 로인들이 아무때나 누워 허리를 지질수 있게 해주라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는것이였다.

윤기나는 장판과 무늬고운 양단이불, 조선식베개… 생활의 구석구석까지 속속들이 스며있는 그이의 다심하고 자애깊은 사랑은 끝내 그들을 울리였다.

일행이 다심하신 그 사랑에 감격을 금치 못하며 숙소를 돌아보고있을 때 최고사령부의 한 일군이 숙소로 찾아왔다.

그는 선생들이 비록 수도 평양에서 천여리 떨어진 압록강반의 여기 만포 고개리에 와있지만 바로 여기서 멀지 않은 산골짜기에 김일성장군님께서 계시는 최고사령부가 있다고, 사실상 지금 이 만포는 미제침략군놈들에게 섬멸적타격을 주기 위한 작전적요충지나 다름없는 곳이라고, 그러니 전쟁승리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안착된 생활을 하기 바란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는 남조선정객일행이 모두 무사히 도착했다는 보고를 받으신 수령님께서 정세가 어렵고 복잡하며 부족한것이 많다고 하여도 우리를 찾아온 사람을 잘 보살펴주어야 한다고, 본래 신의에는 신의로 대답하는것이 사람의 도리인데 하물며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인것만큼 그런 사람들을 더 잘 돌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였다고 감동어린 어조로 이야기하였다.

순간 남조선정객들의 마음속에서는 격정의 소용돌이가 굽이쳤다. 혹시 두메산골로 영 피난시켜버리는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털어버리지 못하던 몇몇 사람들의 얼굴에도 화색이 돌고 기쁨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뜨거운 감격과 환희에 넘쳐있던 그들은 불편한 점이 없는가, 요구되는것이 무엇인가고 묻는 일군에게 사소한 불편도 없으니 수령님께서 안심하시도록 잘 말씀드려달라고 거듭 당부하였다.

그날부터 서울에서 만포까지 후퇴하여 들어온 그들은 훌륭하게 꾸려진 숙소에서 아무런 불편을 모르고 생활하게 되였다.

그들의 생활에 언제나 커다란 관심을 돌리시던 수령님께서는 로인들의 몸보신에는 소고기가 더 좋다고 하시며 늘 소고기를 떨구지 않도록 해주시고 겨울에 비타민C가 부족할수 있다시며 신선한 과일과 남새도 자주 보내주도록 하시였다. 어느날에는 온돌방에서는 양복이 불편하니 조선옷을 입게 하고 외출할 때에는 양복을 입게 하라고 하시며 매 사람에게 고급양복과 솜을 두툼하게 둔 바지저고리를 보내주시였다.

그러던 어느날 우사 김규식선생이 병상에 눕게 되였다. 그의 건강에 대하여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려주시던 수령님께서는 한 보건일군에게 지시하여 그를 진찰해보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시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으신듯 11월 1일에는 내각부수상 김책을 부르시여 김규식선생은 민족적량심과 의리가 있는 애국인사이라고 하시면서 4월남북련석회의에 참석하고 나가서 활동한 그의 공적과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의 어려운 때에 병약한 70고령의 몸으로 불원천리하고 북에 들어온 공적을 높이 평가하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신의에는 신의로 대하는것이 사람의 도리입니다. 우리는 신의를 귀중히 여기는 공산주의자들인것만큼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우리와 함께 손잡고 나가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서는 끝까지 믿고 이끌어주고 돌봐주어야 합니다.》

계속하여 수령님께서는 김규식선생은 비록 고령이지만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하여야 할분이라고, 그러므로 그가 건강한 몸으로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성업에 이바지할수 있도록 치료를 잘해주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만포에 있는 적십자병원에 입원시켜 집중치료를 받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김규식선생뿐아니라 자강도에 와있는 남조선정계인사들의 생활에 대해서도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하시며 안재홍, 조소앙, 최동오, 조완구, 오하영선생을 비롯하여 남조선에서 들어온 인사들의 민족적량심과 미제와 리승만도당을 반대하고 조국통일을 위한 애국의 길에 나서려는 결심을 귀중히 여겨야 한다고, 해당 기관에 지시하여 적기의 폭격이 심한 조건에서 남조선에서 들어온 인사들의 신변안전대책을 잘 세우며 그들이 불편없이 생활하도록 하여야 하겠다고 강조하시였다.

그후 김규식선생은 1950년 12월 어느날 불치의 병을 이겨내지 못하고 애석하게도 71살을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비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못내 가슴아파하시며 《로동신문》, 《민주조선》, 《조국전선》신문들에 부고를 내도록 하시고 그의 장례를 잘해줄데 대하여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그러시고는 홍명희내각부수상에게 김규식선생은 나라의 통일을 위하여 많은 일을 한분인데 아깝게도 사망하였다고, 김규식선생은 미제와 리승만괴뢰도당의 파쑈폭압밑에서도 자기의 지조를 굽히지 않은 량심적인 민주인사이라고, 그는 전쟁이 일어나자 미국놈을 따라간것이 아니라 우리를 찾아왔고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는 어려움을 무릅쓰고 우리를 따라 서울에서 만포까지 들어왔다고 하시면서 그의 애국애족의 한생을 높이 평가해주시였다.

그이의 말씀을 전달받은 남조선정객들은 김규식선생이 며칠전에 수령님의 고마운 사랑과 은정에 다함없는 감사의 마음을 금치 못하며 병상에서 쓴 시구절을 다시금 되새겨보면서 격정의 눈물을 흘리였다.

 

오호라!

위대하도다 현명하도다

영명하신 김일성장군님

이내 인생을 구원해주셨소

이 한몸 죽은들 천만년 잊을손가

자애깊으신 김일성장군님!

 

정녕 끊임없이 베풀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사랑과 은정이 있었기에 공화국의 품에 안긴 남조선정객들은 온 나라가 전쟁의 참화를 겪던 시기에도 아무 불편도 없이 안전한 곳에서 생활할수 있었고 전후에는 평양에 올라와 생의 말년까지 복된 삶을 누릴수 있었으며 세상을 떠난 후에는 애국지사의 값높은 영예를 지니고 영생의 언덕에 오르게 되였다.

정녕 맑은 물, 흐린 물 가림없이 다 받아들여 정화시키는 바다와 같이 남조선정객들을 비롯하여 남반부에서 들어온 각계각층의 모든 사람들을 한품에 안아 한량없는 믿음과 은정을 베풀어주시며 민족의 통일성업에 참답게 이바지해나가도록 이끌어주시고 인생을 빛내여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의 숭고한 동포애적사랑은 통일조국의 래일과 더불어 길이 전해질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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