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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2 장 1. 미제의 무력침공에 대처하여 -경무대로동자에게 베푸신 믿음과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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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8-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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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  2  장

미제의 무력침공을 물리치고 평화적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길에서

1. 미제의 무력침공에 대처하여

경무대로동자에게 베푸신 믿음과 사랑

 

온갖 부패와 범죄가 살판치던 서울, 미제와 리승만도당의 학정하에 시달리던 인민들의 원한의 한숨소리만 높던 어둠의 도시에 참다운 해방의 아침이 밝아왔다.

1950년 7월 15일 해방된 서울거리로 승용차가 달리고있었다. 서대문을 지나 태평로를 거쳐 차는 어느덧 북악산밑 경무대에 들어섰다.

차가 멎자 간편한 군복차림의 위풍당당한분이 내리였다. 해방된 서울지역을 시찰하러 오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차에서 내리시자 근엄한 표정으로 경무대를 둘러보시였다.

1920년대에 세워진 후 력대 일제총독들이 틀고앉아 우리 민족에게 온갖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던 악의 소굴, 8. 15후에는 미군정장관이, 며칠전까지는 리승만역도가 틀고앉아 예속과 분렬, 파쑈와 전쟁책동을 일삼던 복마전이였다.

이날 경무대를 돌아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일하던 로동자들이 있었겠는데 그들이 다 어디로 갔는가고 물으시였다.

일군들은 이 건물안에 있던 로동자들이 일제때에는 일본놈밑에서 일했고 8.15후에는 미국놈들과 리승만도당에게 복무했기때문에 다른데로 보냈다고 말씀드리였다.

그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괴뢰기관안에서 심부름을 하면서 착취와 천대를 받으며 살아온 그들을 친일파나 민족반역자로 락인찍어서는 안된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불러오라고 당부하시였다.

일군들은 이튿날 김포비행장근처의 어느 농촌에 가있던 한 열관리공을 데려왔다. 김재익이라고 하는 마흔여덟살 난 그는 일제때부터 20년간이나 경무대에서 보이라를 돌린 로동자였는데 가족을 데리고 고향인 김포로 내려가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반갑게 맞아주신 다음 경력에 대하여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그러시고는 오래동안 이 경무대의 담장안에서 열관리공으로 일하였으면 남다른 수모와 천대를 많이 받았을것이며 하루가 십년맞잡이로 고통스러웠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그의 손을 다정히 잡아주시였다.

오래동안 삽질을 하여 썩살이 배기고 터갈라진 그의 손을 보시며 안색을 흐리시였던 수령님께서는 동무의 손을 보니 우리 할아버지생각이 난다고, 나의 근본을 따지면 동무와 같은 근로하는 인민의 아들이라고 하시였다.

순간 김재익은 자기 귀를 의심하며 그이를 우러러보았다. 《동양의 맹주》라고 으시대며 그토록 포악무도하던 왜놈들이 그 이름만 들어도 벌벌 떨던 전설적인 영웅 김일성장군님께서 자기와 근본이 같다니…

더우기 여직껏 그 누구도 천하게 여기며 거들떠보지도 않던 험한 자기의 손을 다정히 감싸쥐시고 자신도 근로하는 인민의 아들이라고 하시는 그이의 말씀을 들으며 김재익은 난생처음 받아보는 따뜻한 인정과 사랑에 감격을 금치 못하였다.

명철하기는 하나 랭정하고 굳세고 용맹하기는 하나 혹독하다는것이 장군에 대한 일반적인 표상인데 그와는 판이하게 더없이 다정하고 부드러우며 인간미넘치는 그이의 모습은 그에게는 놀라움을 넘어 신비함으로 안겨왔으며 그로 하여 격정은 더욱 큰것이였다.

솟구치는 감격의 눈물을 연신 팔소매로 닦아내고있는 그의 모습을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원래 세상리치로 보면 로동계급이 이 세상 모든것의 주인으로 되여야 하며 그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고,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도 동무와 같은 로동계급이 공장의 주인, 나라의 주인으로 되여야 한다고, 해방된 남녘땅의 로동계급은 나라의 주인된 자각을 가지고 조국해방전쟁의 승리와 새 사회건설을 위하여 적극 투쟁하여야 한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아직 남반부의 모든 지역을 다 해방하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미제침략자들을 때려부시고 남반부의 전지역을 하루빨리 해방하자면 로동계급을 비롯한 각계각층 군중이 미제와의 싸움에 적극 떨쳐나서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이어 그가 우리 글을 모른다는것을 헤아리신 수령님께서는 모른다고 락심하지 말고 이제부터라도 열심히 배우고 또 배워야 한다고, 사람은 글을 알아야 앞을 내다볼수 있고 혁명사업도 잘할수 있으며 또 사는 보람도 느낄수 있다고 타이르시듯 교시하시였다.

담화를 마치시면서 나는 동무가 해방된 남녘땅의 로동계급의 한사람으로서 높은 계급적자각을 가지고 조국해방전쟁의 승리와 새 사회건설에서 한몫 단단히 하리라고 믿습니다라고 하시는 그이의 음성에는 그만이 아닌 남녘동포들에 대한 다함없는 기대와 애정이 넘쳐흐르고있었다.

김재익에 대한 그이의 사랑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가 가족이 많아 고생이 많을것이라고 하시면서 그의 집에 쌀을 실어보내도록 하시였으며 어느날 점심시간에는 통닭을 그에게 보내주시였다.

그날 통닭이 오른 점심상을 받고 그 사연을 알게 된 그는 《장군님!》 하며 감격에 목메여 흐느껴울었다.

진정 그 눈물은 사람축에도 들지 못하던 자기에게 인간의 존엄과 삶의 보람을 안겨주신 재생의 은인이신 수령님에 대한 다함없는 감사의 눈물, 경모의 눈물이였다.

그이의 사랑은 경무대에서 일하던 다른 로동자들에게도 따사롭게 미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이 일어나자 뿔뿔이 흩어졌던 전공, 열관리공, 취사원, 청소부를 비롯한 로동자들을 다 찾아오도록 하시고 그들에게 뜨거운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어찌 경무대로동자들뿐이랴.

서울에 나오시여 바쁘신 나날을 보내시던 수령님께서는 7월 31일 오후 2시경에는 서울시 북악산숙소앞 도로에서 몸소 서울시민들을 만나주시고 리승만도당의 통치밑에서 살아온 그들의 지난날의 생활형편에 대하여 알아보시였으며 정의의 싸움에 떨쳐나선 인민군대에 대한 원호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교시하시면서 그들에게 승리의 신심과 용기를 안겨주시였다. 또 어느날에는 청계천가의 가난한 인민들이 사는 집집을 돌아보시며 그들의 살림형편을 구석구석까지 헤아리시고 시민들에게 식량까지 내여주도록 하시였다.

1950년 9월말 서울시민들은 한강으로 수천수만개의 통나무토막들이 떼를 지어 떠내려오는 희한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였다. 그들은 그 통나무토막들을 좋아라고 앞을 다투어 건져가면서도 거기에 깃든 민족의 어버이의 한량없는 은정에 대해서는 알수 없었다. 사실 거기에는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었다.

그해 8월초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민들의 생활형편을 료해하시다가 시민들이 겨울용땔감의 부족을 느끼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시였다.

내각 림산국을 비롯한 여러 부문의 책임일군들을 급히 부르신 수령님께서는 서울시민들이 해방되여 공화국의 품속에 안긴 오늘에 있어서도 그들이 이전과 같이 고통을 당하게 할수는 없다고, 우리가 피흘리며 전쟁하는 목적도 남반부인민들이 행복한 생활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하시면서 서울시민들의 땔나무보장문제에 대하여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이의 교시에 일군들은 격정을 금할수 없었다.

그때는 타는듯 한 해볕에 도로의 아스팔트마저 녹아내리던 삼복철이였고 더우기 전시였다.

그런데 전쟁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최고사령관께서 서울시민들의 겨울용땔나무문제까지 마음쓰시는것이 아닌가.

그날 땔나무해결방도를 구체적으로 밝혀주신 수령님께서는 로력사정이 그처럼 긴장한 전시환경에서도 강원도 설악산에 많은 채벌로력을 파견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깊은 관심속에 9월 하순에 서울시민들에게 보장할 땔나무전량이 마련되였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정황이 조성되였다. 인민군대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였던것이다.

애써 마련한 통나무이지만 적들의 수중에 들어가게 할수 없으니 불태워버려야겠다고 생각한 내각 림산국의 일군은 위대한 수령님께 이에 대하여 보고드리였다.

그 일군의 보고를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불태워버릴것이 아니라 토막을 내여 강물에 띄워보내주자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신 후 며칠내로 그 많은 통나무들을 토막칠수 있게 군인들을 동원시켜주시였다.

서울시민들을 위해 삼복철에 시작된 화목전투는 이렇듯 전쟁의 가장 준엄한 나날에도 계속되였다.

서울시민들은 한강으로 떠내려온 그 사연깊은 통나무장작으로 그해 겨울을 났다고 한다.

옛날부터 고생하는 사람을 도와준 행동은 미덕으로 찬미되였다고 하지만 전화의 그 나날 미제의 식민지통치와 리승만반동통치배들의 학정에서 해방된 남녘겨레들에게 베풀어주신 우리 수령님의 이런 뜨거운 동포애는 무엇으로 다 칭송할수 있으랴.

실로 우리 수령님께서 남녘동포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정에 대한 이야기는 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헤아릴수 없이 많고많다.

한강나루터에서 있은 이야기는 오늘도 사람들을 끝없이 감동시키며 전설처럼 전해지고있다.

주체39(1950)년 여름 어느날 최전선인 충주 남쪽 수안보에서 돌아오시던 수령님께서는 한강나루터에 이르시였다.

강가에는 마침 나루배가 있었는데 배에는 피난갔다가 오는 농민들이 여러명 앉아있었다.

그이께서 강가에 서신채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고계시는데 부관이 그이를 배에 모시고 강을 건느려고 배쪽으로 내려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멈춰세우시였다.

《괜찮소, 저이들부터 먼저 강을 건느게 하시오. 보매 피난갔다가 돌아오는 사람들 같은데 빨리 제 집으로 찾아가서 새 생활을 펴야 할게 아니요.》

그이께서 이렇게 교시하셨지만 실상 누구보다도 빨리 건느셔야 할분은 수령님이시였다.

전선에도 후방에도 그이의 지도를 기다리는 일들이 수없이 많았다. 하지만 수령님께서는 해방의 기쁨을 안고 제 집으로 돌아가는 남조선농민들을 먼저 건느게 하시려고 자신께서는 무시로 적기가 싸다니는 강가에 그냥 서계시였다.

이때 그이께서 누구신지 아직 모르는 한 로인이 배에서 내리며 우리 백성들은 일없으니 인민군대어른들부터 먼저 강을 건느라고 말씀드리였다.

그이께서는 로인의 곁에 다가가시여 그러지 말고 어서 배에 올라 먼저 건느라고 거듭 교시하시였다.

그러나 로인은 좀처럼 배에 오르려 하지 않았다.

로인이 너무 그러는 바람에 수령님께서는 그의 터실터실 갈라진 손을 잡아 이끄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그럼 함께 건너갑시다.》

그이께서는 농민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시며 지난 시기 그들이 겪은 고초와 생활형편에 대하여 알아보신 다음 인민군대를 도와 미국놈을 완전히 내몰고나면 남녘땅농민들의 생활도 밝고 아름답게 꽃필것이라고 교시하시였다.

지난날 어둠의 나락에서 헤매이던 남녘겨레들을 하루빨리 해빛밝은 세상에서 살게 하시려는 숭고한 뜻이 어린 수령님의 말씀에 배에 탄 사람들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피여났고 저저마다 인민군대를 도와 전쟁승리에 이바지할 결의들을 다지였다.

숭고한 동포애, 인간애의 화신이신 수령님의 하늘같은 사랑과 은정을 받아안으며 그이를 따르는 길에 개인의 행복도, 민족의 앞날도 있다는것을 심장깊이 체득한 남조선인민들은 오직 수령님만을 굳게 믿고 전쟁의 승리를 위한 사업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섰다.

김재익을 비롯한 경무대로동자들은 전쟁의 불비속에서 자기 초소를 굳건히 지켰고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시기에는 은혜로운 태양의 품을 찾아 너도나도 인민군대를 따라나섰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울을 비롯한 해방된 남반부지역을 현지지도하시며 인민들에게 베풀어주신 사랑과 은정은 남녘인민들속에 영원히 지울수 없는 깊은 인상을 남기였다.

후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쟁시기 남조선인민들을 만나시던 때의 일들을 추억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전쟁때 서울에 나가보았는데 참 감회가 깊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아직 조국개선의 인사도 남녘동포들에게 하지 못했다고, 조국통일의 인사를 겸해서 해야겠는데 분렬의 력사만이 깊어가고있다고, 조국해방이 지난날 나의 당면과업이라면 조국통일은 오늘날 나의 당면과업이라고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정녕 남반부인민들과 다시 만날 통일의 그날을 위해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치시였으며 조국통일의 앞길에 밝은 전망을 열어주신 위대한 김일성주석은 하늘같은 도량, 인자한 덕망, 태양의 인력과도 같은 무한한 사랑으로 온 겨레를 안아주고 보살펴주신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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