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트 내 전체검색

 

문예물

도서 | 이북도서 『선군조선의 오늘』중에서 5. 1) 전진하는 6.15통일시대 - 우리 민족끼리의 열풍-

페이지 정보

작성자 작성일18-01-05

본문

이북도서 『선군조선의 오늘』중에서

 

5. 선군의 위력을 만방에

 1) 전진하는 6.15통일시대

우리 민족끼리의 열풍

 

선군의 흐름속에 6.15통일시대의 막이 올라 7년,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의 기치밑에 우리 민족끼리의 열풍이 세차게 굽이쳐온 지난 7년간의 통일운동력사는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의 정당성과 거대한 생활력이 뚜렷이 과시되여온 뜻깊은 나날이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민족자주의 원칙, 애국애족의 정신으로 일관된 선군정치와 그에 기초한 우리의 조국통일정책과 주동적인 노력에 의하여 력사적인 평양상봉이 이루어지고 6.15북남공동선언이 채택되였으며 북과 남사이의 화해와 협력관계가 여러 분야에 걸쳐 심화발전되고있습니다.》(《김정일선집》 제15권 367∼368페지)

《우리 민족끼리》리념은 무엇보다 이 땅에 거족적인 자주통일운동의 열풍을 몰아왔다.

지난 시기 통일행사들은 남녘겨레들이 참가하지 못한것으로 하여 반쪽짜리 행사로 치르어지군 하였다. 그러나 6.15통일시대가 펼쳐진 오늘에는 북과 남, 해외 3자가 한자리에 모여 통일행사를 진행하는것이 자연스러운 일로, 응당한 일로 되였다.

2001년 6월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발표 1돐을 맞으며 북과 남의 각계층 인사들과 단체들은 분렬사상 처음으로 금강산에 모여 민족통일대토론회를 성대히 진행하였는데 여기에는 북의 정당, 단체 대표 200여명과 남조선의 정당, 단체 대표 200여명, 각 지역의 해외동포대표단과 대표 20명이 참가하여 겨레의 통일열기를 뜨겁게 하였다. 남조선의 신문, 통신들이 이 행사를 가리켜 《50여년만에 열린 남북련석회의》, 《남북련석회의이후 가장 큰 규모의 회합》이였다고 평한것은 결코 우연한것이 아니다. 

뿐만아니라 그해 8월 15일에도 북, 남, 해외 3자가 평양에서 민족통일대축전을 뜻깊게 거행함으로써 21세기의 첫 조국해방의 날을 전민족적인 통일행사로 장식하였고 2002년 8월 15일에는 북의 각계층 인사들이 서울에 나가 남녘동포들과 함께 민족통일대회를 진행하여 우리 민족의 뜨거운 통일열의를 다시한번 과시하였다.

지난 7년간 6.15와 8.15, 3.1 등 중요계기들에 북과 남, 해외의 각계각층 단체와 인사들이 평양과 금강산, 서울과 인천, 광주 등지를 오가며 진행한 대규모의 민족통일행사들은 10여차에 달한다.

6.15공동선언지지관철을 위한 북남로동자들의 통일대회, 북남농민통일대회, 북남청년학생통일대회, 북남녀성통일대회, 북남작가대회 등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 녀성 그리고 학자, 예술인, 언론인, 문학인, 체육인, 종교인을 비롯한 북과 남의 계층별통일대회들과 상봉모임, 토론회들이 광범히 벌어졌다. 이 모든 통일행사들에서는 한결같이 6.15공동선언을 지지하고 실천하며 외세의 간섭을 배격하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라의 통일을 앞당겨나갈 결의들이 표명되였으며 그것을 반영하여 선언문, 호소문, 성명 등 공동문건들이 만장일치로 채택발표되였다.

특히 6.15시대 우리 겨레의 자주통일운동에서 특기할만한 사변은 2005년 3월 분렬사상 처음으로 북과 남, 해외의 각계층 정당, 단체, 인사들을 폭넓게 망라하여 결성되였던 전민족적통일운동기구인 6.15공동선언실천을 위한 북, 남, 해외공동행사준비위원회가 그해 12월 10일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략칭 《6.15민족공동위원회》)로 정식 발족한것이다. 상설적인 통일운동련대조직인 6.15공동선언실천 민족공동위원회가 결성됨으로써 우리 겨레는 공동선언발표이후 통일운동에서 거둔 성과를 공고발전시켜 겨레의 통일지향과 의지를 하나로 모아갈수 있는 민족대단결의 모체, 강력한 추동력을 가지게 되였으며 민족의 단합된 힘으로 자주와 평화를 지키고 단합과 통일의 새 력사를 창조하기 위한 투쟁에 더욱 힘차게 떨쳐나설수 있게 되였다.

이렇듯 6.15통일시대가 펼쳐진 지난 7년간 우리 겨레의 통일운동은 지난 시기의 지역적분산성을 극복하고 북과 남, 해외를 포괄하는 거족적인 운동으로 발전하였으며 일부 계층의 범위를 벗어나 각계각층을 망라한 대중적인 운동으로 확대강화되였다.

《우리 민족끼리》리념은 다음으로 북남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겨레의 화해와 협력에 실질적으로 이바지하는 통일대화의 새 력사를 열어놓았다.

우리 민족의 최대숙원인 조국통일은 그 어떤 외세가 가져다주지 않는다. 오직 북과 남이 마음을 합쳐 우리 민족자체의 힘으로 이룩해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북남사이의 대화와 협상이 북남관계를 화해와 단합의 관계로 전환시켜 우리 민족끼리 나라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활로를 열어나가는것으로 되여야 한다.

6.15북남공동선언리행을 위한 첫 조치의 일환으로서 2000년 7월 내외의 커다란 기대와 관심속에 진행된 제1차 북남상급회담에서는 회담을 북남공동선언의 합의사항을 리행하는 회담으로, 불신과 론쟁으로 일관되던 과거의 낡은 타성에서 벗어나 신의와 협력의 정신에서 문제를 타결하는 회담으로, 실질적으로 결실을 맺는 회담으로 만들데 대한 원칙적문제들에서 합의가 이룩되였다.

이로써 앞으로 북남상급회담뿐아니라 북과 남사이의 여러 갈래의 회담전반을 6.15북남공동선언리행에로 지향시켜 실속있게 전개해나갈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게 되였다.

그리하여 2007년 7월까지 북남당국사이에는 21차의 상급회담과 13차의 경제협력추진위원회 회의 그리고 6차의 북남장령급군사회담을 비롯하여 무려 140여차의 회담과 접촉이 진행되였다. 이것은 북남대화력사에서 전례없는 기록이다.

체육, 문화, 과학 등 분야에서의 공동행사와 협력사업을 위한 회담과 접촉들도 폭넓게 진행되였다.

북남대화와 접촉들이 모두 순조롭게 진행된것은 아니다. 2002년 서해해상에서 발생하였던 무장충돌사건과 핵문제를 구실로 화해와 단합의 북남관계를 불신과 대결의 관계로 되돌려세우려는 미국을 비롯한 내외반통일세력들의 방해와 도전은 계속되였고 이로 하여 우여곡절을 겪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선군의 위력과 《우리 민족끼리》리념이 가져다준 생명력에 의해 그 명맥은 이어져갔고 그 과정에 적지 않은 훌륭한 합의들도 마련되였다.

이것은 북남대화와 접촉이 화해와 협력보다 대결고취의 한 공간으로 리용되고 북남관계를 악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오던 지난날의 불미스러운 대화들과 구별되는 점이다.

1990년대초 북남고위급회담에서는 무려 8차례의 본회담과 수십차례의 분과회의와 실무접촉을 거쳐 겨우 한개의 합의문건이 이루어졌다면 6.15이후의 북남상급회담은 미국의 악랄한 방해책동으로 진통을 겪기는 하였으나 거의 매번 합의문건을 채택하였다.

6.15이전에는 단 한차례의 북남적십자예술단 및 고향방문단교환사업을 성사시키기 위하여 무려 14년이라는 세월과 25차의 적십자예비회담, 10차의 본회담, 3차의 실무대표접촉을 비롯하여 수십차의 회담과 접촉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면 6.15이후에는 4년남짓한 기간에 4차례의 적십자회담을 통하여 10차에 걸치는 흩어진 가족, 친척상봉을 성사시킬수 있었다.

이것은 6.15통일시대에 와서 북남대화가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에 기초하여 결실있는 대화로 되고있다는것을 여실히 보여주고있다.

특히 민간급대화가 활성화된것은 6.15이전에 남조선당국의 《창구일원화》책동에 의해 민간대화와 교류가 크게 억제당한데 비하면 커다란 전진으로서 이것 역시 지난날의 대화들과 또 하나 구별되는 점이다.

북과 남의 우리 겨레는 다방면적인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6.15북남공동선언을 관철하기 위한 공동의 방도들을 진지하게 협의할수 있었으며 《우리 민족끼리》의 리념밑에 서로의 리해와 인식을 깊이함으로써 민족적화해와 단합과정을 촉진시키고 협력사업을 성과적으로 진척시킬수 있게 되였다.

《우리 민족끼리》리념은 다음으로 북과 남의 우리 겨레가 서로 오고가는 통일의 넓은 길을 활짝 열어놓았다.

이전에는 남조선청년학생조직인 《전대협》의 나어린 녀대학생대표가 사선을 넘어 평양을 방문한것이 《죄》가 되여 남조선에 돌아가 형벌의 대상으로 되였다면 오늘은 6.15가 열어준 넓은 길을 따라 수많은 사람들이 북과 남으로 오가면서 화해와 단합을 도모하고 통일의지를 굳게 다지고있다.

력사적인 6.15북남공동선언이 열어놓은 길을 따라 2000년 8월에는 큰 규모의 남조선언론사대표단이 처음으로 평양을 방문하여 위대한 장군님을 만나뵙는 영광을 받아안았으며 뒤이어 그해 10월에는 조선로동당창건 55돐을 계기로 1948년 남북련석회의이후 처음으로 남조선의 14개 정당, 단체대표들과 각계 인사 수십여명이 평양을 방문하였다. 또한 그 길을 따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2000년 9월 남조선에 있던 63명의 비전향장기수들이 분렬의 장벽을 넘어 공화국의 품에 안기는 력사에 있어보지 못한 대정치사변이 일어났다.

특히 남녘겨레들이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기 위하여 일으킨 《아리랑열풍》은 분렬 60년력사에 처음 있는 일이였다.

남조선의 언론들도 《<아리랑잔치> 분단을 잊었다》, 《화려한 교예, 흥겨운 연주 <강성한 나라>열망 <꿈틀>》, 《지구 최고의 마술 아리랑》 등의 제목들을 달고 그에 대한 소개에 지면을 아끼지 않았던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공연을 관람하기 위하여 남녘동포들은 저저마다 평양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들속에는 정치인도 있었고 공무원도 있었으며 기업인, 언론인, 학자, 청년학생, 종교인들도 있었다.

《아리랑열풍》은 오래동안 반공사상에 물젖어 공화국에 대해 그릇되게 생각해오던 사람들까지 평양으로 떠밀었으며 그들의 의식변화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6.15가 마련해준 통일의 넓은 길이 있어 2005년 9월말부터 10월말까지의 근 한달동안에만도 무려 8,500여명의 남녘동포들이 평양에 와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아리랑》을 관람하였는데 이것은 매일 평균 거의 300여명의 사람들이 관람한것으로 된다. 6.15공동선언발표이전까지의 10년동안에 북과 남을 오간 사람은 통털어 637명이라는것을 고려할 때 한달동안에 8,500여명이라는 수자는 우리 민족끼리 열풍의 세기를 쉽게 가늠하게 한다. 《아리랑열풍》에 떠받들려 평양에서는 통일의 옥동녀까지 태여나는 희한한 일도 생겨날수 있었다.

《우리 민족끼리》리념은 체육문화분야에서도 큰 길을 터놓았다.

2002년 9월말 이 나라 강토의 한끝 부산에서 진행된 제14차 아시아경기대회와 2003년 8월 대구에서 진행된 제22차 세계대학생체육경기대회, 2005년 9월 인천에서 열린 아시아륙상선수권대회에 북의 선수단과 응원단이 참가하여 민족의 화합과 통일의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백두산과 한나산에서 출발한 성화가 하나로 합쳐져 부산과 제주의 경기장 봉화대에 지펴지게 된것은 다 선군의 덕, 6.15의 덕택이였다.

또한 2000년 8월에 진행된 국립교향악단의 서울공연, 2002년 9월 남조선 《KBS》교향악단과 남조선 《MBC》공연단의 평양방문공연을 비롯하여 북남예술인들의 합동공연과 합동연주회들, 2001년 6월 평양에서 진행된 민족옷전시회, 2002년 9월과 10월에 평양과 서울에서 진행된 북남태권도시범단의 출연 그리고 북남력사학자들의 평양과 서울, 금강산토론회와 공동자료전시회 및 사진전시회 등도 6.15북남공동선언이 열어놓은 길을 통해 이루어진것들이다.

《우리 민족끼리》리념은 우리 나라를 북과 남으로 두동강낸 분렬의 장벽에 파렬구를 내고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잇는 경이적인 사변도 가져왔다.

지난 2002년 9월 내외의 관심속에 착공식을 가진 동해선, 서해선철도와 도로련결공사는 북과 남의 공동의 노력으로 적극 진척되여 2003년 2월 5일 민족분렬사상 처음으로 동해선림시도로가 완공되여 금강산륙로관광을 위한 시험답사가, 2월 14일에는 시범륙로관광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였다. 또한 2월 21일에는 개성-문산사이 림시도로가 개통되여 개성공업지구건설을 위한 현지답사가 진행되였으며 6월 14일에는 동해선과 서해선 철도련결행사를 북과 남이 공동으로 동시에 진행하였고 2007년 5월에는 동해선과 서해선에서 동시에 렬차시험운행을 진행하여 삼천리강토의 지맥을 하나로 이어놓았다.

민족의 혈맥과 나라의 지맥을 하나로 잇는 이 경사를 두고 온 겨레는 《대립과 갈등, 분단의 세기를 극복하고 화해와 협력, 통일의 시대를 여는 의미있는 일》, 《분단의 철조망과 지뢰밭을 뚫고 통일의 길을 열어놓는 력사적쾌거》라고 하면서 흥분과 격정을 터치고있다.

《우리 민족끼리》리념은 다음으로 북남경제협력이 보다 폭넓고 광범하게 진행되는 새로운 모습이 이 땅에 펼쳐지게 하였다.

북남경제협력은 민족내부의 협력사업으로서 북과 남의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합리적으로 발전시켜 민족의 통일적발전을 이룩하게 할뿐아니라 민족내부에 서로 돕고 도와주는 화해와 신뢰의 분위기를 조성해준다. 또한 경제협력을 통하여 서로 자유로운 래왕과 접촉, 화해의 길을 넓혀나가고 민족대단결의 길을 열어나갈수 있게 한다.

북남경제협력은 이러한 특성으로부터 다른 통일행사나 북남대화보다 내외반통일세력의 더욱 집요한 압력과 방해책동을 받았다.

미국은 《상호주의와 검증을 원칙으로 북을 견제하면서 핵과 미싸일을 중단시키려 하는데 한국이 북에 퍼주고 앞서나가면 공조가 되느냐.》고 남조선당국에 압력을 가하는가 하면 《386콤퓨터도 여러대 련결하면 군사용으로 전용될수 있다》, 《화학비료는 재래식폭약을 생산할수 있기때문에 안된다》, 《식량은 군량으로 들어갈수 있기때문에 검증이 뒤따라야 한다》, 《북조선에 전기를 주면 핵카드를 잃어버리기때문에 절대로 안된다》고 하면서 북남경제협력사업을 코코에 막아나섰다.

특히 금강산관광활성화를 못마땅하게 여기면서 2000년 11월에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이루어질 대북투자는 정당한 투자근거가 없다.》고 시비해나섰으며 2001년 3월에는 미군부와 대조선정책관계인물들까지 전면에 나서서 정상적인 경제거래형태인 금강산관광대가지불문제를 가지고 《북조선미싸일 지원역할》이요, 《미국의 안보를 해치는 결과를 낳을것》이요 하면서 금강산관광중지를 강박해나섰다.

개성공업지구건설도 마찬가지이다. 이 사업을 음으로 양으로 방해해오던 미국은 2004년 2월 워싱톤에서 열린 어느 한 토론회에서 《개성공업지구사업과 관련하여 <북핵해결>전에 또다시 북에 대규모현금이 들어가는 사업에는 반대한다》고 공식선언함으로써 북남경제협력사업을 완전히 차단하려는 저들의 속심을 적라라하게 드러내놓았다.

남조선잡지 《한겨레 21》(2005년 12월 27일호)은 《…한국의 경제협력이 북의 군사력강화에 리용될수 있기때문이라고 했는데 한국의 경제협력이라는게 무엇인가.

개성공단을 보면 신발, 의류, 손목시계, 주방도구, 자동차부품정도를 생산한다. 물품이 반입될 때에는 바쎄나르협약, 정전협정, 미국의 수출품통제법 등 이중삼중의 통제를 받고있다. 오히려 그때문에 남북의 능률적경협이 장애를 받는다. 전혀 근거도 없는 군사기술류출이야기를 하는것은 남북경협을 못마땅해하는 속내를 드러낸것이다.》라고 하면서 북남경제협력을 방해해나서는 미국의 오만한 태도를 신랄히 지탄하였다.

한편 《한나라당》을 비롯한 남조선의 극우보수세력들도 상전의 억지주장에 꼬리를 흔들면서 그 무슨 《대북퍼주기》를 코에 걸고 금강산관광중단을 제창해나섰으며 2003년 2월에는 저들이 다수를 차지하고있는 《국회》에서 《특검법》을 통과시킴으로써 북남경제협력사업을 《특검》의 칼도마우에 올려놓았다.

내외반통일세력들의 이러한 압력과 방해책동으로 하여 《대북송금사건》이 조작되고 2003년 8월에는 북남경제협력의 길에 나섰던 한 기업가가 죽음을 강요당하는 민족사의 비극까지 빚어지게 되였다.

그러나 우리 민족끼리라는 통일의 대명제가 있어 내외반통일세력의 방해책동속에서도 북남경제협력사업은 줄기차게 진행되여왔다.

북남경제협력의 《옥동자》로 불리우는 금강산관광만 놓고보아도 1998년 11월부터 1년동안에만도 금강산관광의 길에 오른 남녘동포들의 수는 11만여명에 달했고 2005년말까지 그 수는 100만명을 넘어섰다. 북과 남은 2003년 6월 4일 개성공업지구 건설착공식을 진행하였으며 2004년 12월 15일에는 현지에서 《개성공업지구 첫 제품생산기념식》을 진행하였다.

또한 유서깊은 평양의 보통강기슭에는 남조선의 한 애국적기업가의 이름을 가진 체육관이 북남경제협력의 상징, 6.15시대 통일애국의 상징으로 일떠서게 되였다.

이렇듯 내외의 반통일세력들의 방해책동을 물리치고 우리 민족끼리의 열풍이 세차게 휘몰아치고있는데 대하여 남조선잡지 《통일한국》은 《세상이 달라져도 너무 달라졌다. 남쪽의 소떼가 무리지어 북으로 가고 남북의 연예인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노래와 춤을 추며 민족의 온정을 나누고있다. 북에서 남쪽에서 진행되는 국제경기대회에 응원단을 파견하여 수만 군중들앞에서 남북의 체육선수단을 함께 응원하기도 한다. 그뿐인가. 남북민간단체대표단이 한자리에 모여 통일대회와 문화교류, 단군릉행사 등 다양한 행사를 펼쳐오고있다. 통일의 보물이 터진것이다.》라고 하였다.

우리 민족끼리의 열풍이 세차게 휘몰아치고있는 속에 남조선인민들속에서는 공화국에 대한 인식이 크게 달라지고있다. 특히 선군정치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그 어느때보다 높이 울려나오고있다.

지난 시기 남조선의 적지 않은 사람들은 선군정치에 대한 몰리해로부터 공화국의 선군정치가 군력을 강화하여 《남침》하기 위한것으로 잘못 인식해왔다. 그러나 미국이 저들의 말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나라들에 대해서는 큰 나라이건 작은 나라이건 제멋대로 주먹을 휘두르면서도 감히 이 땅에서는 침략전쟁의 불을 지피지 못하는것을 보면서 선군정치야말로 민족의 운명을 지켜주는 평화수호의 보검, 우리 겨레의 번영하는 미래를 안겨주는 참된 애국애족의 정치라는것을 인식하고 그에 대한 지지의 목소리를 높이고있다. 이것은 전례없는 일로서 6.15통일시대가 안아온 가장 큰 성과들중의 하나라고 할수 있다.

오늘 선군정치에 대한 남조선인민들의 지지의 목소리가 얼마나 높은가는 인터네트를 통해 활발히 벌어지고있는 선군정치소개선전활동을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2007년 4월 11일부터 16일까지의 사이에만도 남조선의 민주로총과 남북공동선언실천련대,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련합》, 민족정기구현회, 《한국청년단체협의회》가 운영하는 인터네트홈페지들에는 《선군정치의 본질》, 《선군정치의 성격》, 《선군정치는 위력한 사회주의정치방식》, 《선군정치는 인민대중에 대한 참다운 사랑의 정치》, 《사회주의위업수행의 합법칙적요구를 반영한 정치방식》, 《선군정치는 조국통일의 담보》, 《강국건설의 근본문제를 해결한 선군》 등 제목의 글들이 올랐다. 범청학련 남측본부는 자기의 인터네트홈페지에 《선군정치가 없었다면 6.15공동선언도 없었다》, 《선군정치 전개과정》 등을 실었는데 선군정치를 찬양하며 소개선전하는 이 글들은 인터네트를 통해 남조선의 각계층 인민들속에 널리 보급되고있다.

한편 남조선의 인터네트에 접속해보아도 선군정치를 지지하는 남조선인민들의 목소리를 쉽게 들을수 있다.

인터네트신문 《자주민보》는 《북이 선군정치로 군사적대비를 하지 않았다면 미국이 이라크보다 먼저 북을 공격했을것이다. 북의 선군정치가 있음으로 하여 이 땅에서는 전쟁이 방지되고 민족의 자주권이 수호될수 있었다.》고 강조하였다. 또한 많은 인터네트가입자들도 김정일장군님의 선군정치는 민족의 운명을 지켜주는 평화의 보검이다》, 《선군정치는 세계적으로 힘차게 벌어지고있는 반미투쟁의 사상적보루로 되고있다》 등의 글들을 올려 사람들의 심금을 울려주었다. 《선군정치를 지지하는 서울지역 직장인모임》성원들은 《민족의 운명과 <한>반도의 평화를 지켜주는 선군정치를 적극 지지하자.》, 《북의 현실에서 선군의 위력을 실감한 우리는 선군정치를 끝까지 지지하고 옹호할것이다.》, 《이남국민들은 그가 누구이든 자기의 생명을 지켜주는 선군정치를 높이 받들고 그에 보답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것이다.》라고 하면서 장군님의 선군정치를 적극 지지하고 받들어나갈 결의를 표명하였다.

인터네트에서만이 아니다. 2006년에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범민련 남측본부, 통일련대, 남북공동선언실천련대, 《전국련합》, 민주로총, 《전농》, 《한총련》, 《전교조》 등 200여개의 대중운동단체들이 공개적으로 선군정치를 지지옹호하는 성명, 론평, 호소문, 선언문들을 련이어 발표하였다. 이 과정에 《선군지지직장인모임》, 《선군정치지지시민모임》, 《선군정치지지대학생모임》, 《선군연구회》와 같은 새로운 선군지지옹호단체들이 결성되였으며 지어 《미싸일특수부대》, 《자주독립군》, 《핵보유중대》, 《완전무장부대》, 《기수중대》 등 특이한 군사적명칭을 가진 조직들까지 나와 내외의 커다란 관심을 끌었다.

이러한 가운데 2006년 12월 8일 서울의 《기독교회관》강당에서는 6.15공동선언실천 청년학생련대, 남북공동선언실천련대, 《전국대학신문기자련합》, 숭실대학교총학생회의 공동주최로 선군정치대토론회가 공개적으로 진행되였다.

토론회참가자들은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 펼치시는 선군정치를 적극 지지찬동하면서 《선군정치의 핵심은 사회주의를 지키고있는 이북과 제국주의의 거두인 미국사이의 첨예한 대결》이며 《이남이나 이북이나 같은 민족인데 같은 민족이 강력한 힘을 가지고있는것에 대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다 찬성할것》이라고 하면서 《미국이 이북을 침략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는것은 당연한 순서였지만 이북의 강력한 선군정치를 바탕으로 전쟁을 막을수 있었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미국이 인정하든 안하든 북은 신흥군사강국이 되였다는것, 이북의 선군정치와 6.15공동선언으로 인해 비로소 분렬을 끝장낼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며 선군정치의 근본적의미는 조선반도의 자주성과 통일에 있는것이라고 주장하면서 선군정치에 대한 찬양의 목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이에 대해 남조선언론들은 선군정치에 대한 찬양은 《과거부터 친북단체들을 중심으로 있어왔지만 그 흐름이 오늘은 남조선사회일각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고있다.》고 하고있다.

특히 공화국이 핵보유선언과 그에 따른 핵시험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자 《단군이래 최고의 기념비적쾌거》, 《제2의 고구려전성기가 시작됨을 알리는 포성》, 《전민족의 쾌승》, 《선군정치에 대한 자신감의 발로》, 《핵과학력사상 전무후무한 획기적인 기술적쾌거》 등으로 찬양의 목소리를 더욱 높이였다.

6.15통일시대가 안아온 우리 민족끼리의 열풍속에서 북남사이의 첨예한 대결의 얼음장이 녹아내리고있다.

지난 7년간 우리 민족의 조국통일운동에서 이룩된 모든 성과들은 6.15북남공동선언과 그 핵인 《우리 민족끼리》의 정당성과 생활력을 뚜렷이 보여주고있으며 6.15의 기치, 《우리 민족끼리》의 기치를 높이 들고 나아가는 길에 자주도 평화도 통일과 번영도 있다는것을 힘있게 확증하였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Copyright © 2001 - 2018 반제민족민주전선 《구국전선》편집국 All rights reserved.
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