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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2장 1. 미제의 무력침공에 대처하여 -《리조실록》구출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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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1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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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1)중에서

제  2  장

미제의 무력침공을 물리치고 평화적통일의

새로운 국면개척의 길에서

1. 미제의 무력침공에 대처하여

《리조실록》구출작전

 

장구한 인류력사에는 1만 4 500여회의 전쟁이 기록되여있다. 그 많은 전쟁중에서 파괴가 동반되지 않은 전쟁은 없었다. 전란의 와중에서 인명피해는 물론이고 인류가 오랜 기간 창조한 문명이 말살되고 해당 나라와 민족의 력사유적들과 문화재들이 파괴되거나 도난당하였다.

지난 조선전쟁도 례외가 아니였다. 미제국주의자들과 그 주구들이 도발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들이 적들에 의하여 파괴소각되거나 도난당하고있었다.

그때 전쟁으로 인하여 불타버리거나 유실될 위기에 처했던 문화재들가운데는 리왕조의 정부일지라고 하는 《리조실록》도 있었다.

리왕조의 27대에 이르는 500여년의 력사가 수록된 《리조실록》은 당대 우리 나라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와 풍습들이 풍부하게 수록되여있고 주변나라의 일부 력사, 문화와 관련된 자료들이 기록되여있는 귀중한 재보였다.

인민군대의 노도와 같은 진격으로 서울이 해방된지 얼마 안되던 주체39(1950)년 7월 8일이였다.

백남운교육상은 이날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의 부르심을 받게 되였다.

그는 전쟁이 일어난지 보름도 안되던 때였으니 자기에게도 전쟁과 관련한 어떤 임무를 주시려는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전쟁, 그밖에 다른것에 대하여 생각할 겨를이 없던 때였으니 그것은 당연한것이였다. 하여 그는 비록 군인은 아니였지만 수령님께서 주시는 그 어떤 임무도 반드시 수행해낼 각오를 안고 달려왔다.

그런데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시는 임무는 참으로 예상밖이였다.

《〈리조실록〉을 구출하기 위한 사업을 조직하여야 하겠습니다. 〈리조실록〉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귀중한 재보입니다.》

뜻밖의 말씀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그에게 수령님께서는 《리조실록》이 어떠한 내용을 담고있는가에 대하여 언급하시며 이렇게 말씀을 이으시였다.

《지금 미제침략자들과 그 주구들이 도발한 전쟁으로 말미암아 조국은 시련을 겪고있으며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적들에 의하여 파괴소각되거나 도난당하고있습니다. 〈리조실록〉도 피해를 입거나 없어질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에 대하여 절대로 수수방관할수 없습니다.》

그가 수령님의 깊은 의도가 새겨져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고있는데 그이께서는 절절히 말씀을 이으시였다.

《조국을 가장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도 공산주의자들이고 민족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들도 공산주의자들입니다. 우리는 민족의 귀중한 재보인 〈리조실록〉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하며 〈리조실록〉을 반드시 구출하여야 합니다.》

그이의 말씀을 받아안는 백남운교육상의 마음은 한없는 감동으로 뜨겁게 젖어들었다.

벌써 해방후에 조선물질문화유물조사보존위원회를 내오도록 하시고 새 사회건설을 위해 한푼의 돈이 귀하였지만 막대한 자금을 돌리시여 공화국북반부에 널려있는 문화유적들을 조사발굴하여 잘 보존하도록 대책을 세워주신 수령님이시였다. 외세의 발밑에 있는 《리조실록》을 두고 언제나 마음쓰시던 그이께서는 1948년 4월남북련석회의때에는 북으로 들어온 민주독립당 위원장 홍명희선생을 만나시여 《리조실록》은 유명한 국보라고 하시며 서울에 있는 《리조실록》의 관리문제를 두고 몹시 걱정하시였다.

원래 《리조실록》은 4개 부가 인쇄되여 리조시기 나라의 중요한 서적을 보관하던 장소들인 서울의 춘추관과 충청도의 충주, 경상도의 성주, 전라도의 전주에 있는 사고들에 분할되여 보관되여왔었다.

1592년 임진조국전쟁시기에는 왜적들에 의해 3개 부는 불타버리고 유독 전주사고에 보관되여있던 실록만이 겨우 남게 되였다.

임진조국전쟁후 다시 4개 부를 인쇄하였지만 부패무능한 봉건통치배들의 권력다툼속에서 유실되였고 한부는 일제에게 략탈당하여 간또대지진때 재가루로 되고말았다.

해방후 미군의 남조선강점후 《리조실록》은 림종의 운명에 놓이게 되였다. 미제침략군은 창덕궁의 규장각에 틀고앉아 조선사람들의 출입을 막고 많은 고서적들을 로략질해가고있었던것이다. 그런 속에 전쟁이 일어났으니 《리조실록》이 또 어떤 재난을 당할지 누구도 알수 없는 일이였다.

하지만 전란의 시기라 누구도 《리조실록》에 생각이 미치지 못하고있었으며 설사 생각한다고 해도 어쩔수 없는 일로 보고있었다.

그런데 전쟁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최고사령관동지께서 《리조실록》이 유실될것을 우려하시여 몸소 구출작전을 펼쳐주시는것이 아닌가.

그의 이러한 생각을 헤아리시듯 잠시 말씀을 끊으시였던 수령님께서는 이렇게 강조하시였다.

《물론 전시의 어려운 조건에서 근 1 800권에 달하는 〈리조실록〉을 사소한 손상도 없이 구출한다는것이 용이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하나 우리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인 〈리조실록〉을 후방의 안전한 장소에 옮기고 잘 보관하여야 합니다.》

그는 이 순간 그이의 가르치심을 전투명령으로 받아들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모든 기관과 인민군부대들에서 〈리조실록〉구출사업을 잘 보장하여주도록 하기 위하여 동무들에게 나의 명의로 된 신임장을 주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군대식으로 차렷자세를 취하였다.

그러는 그를 만류하시며 자리에 눌러앉히신 수령님께서는 잠시 지도를 들여다보시다가 송수화기를 드시더니 어느 한 군사지휘관을 찾으시여 《리조실록》을 구출해오는데 수송기재가 필요하다고 하시면서 군용자동차동원을 지시하시였다. 그러시고는 또다시 다른 지휘관을 찾으시여 서울주둔부대에서 《리조실록》의 수송을 보장할데 대한 지시를 내리시였다.

전선이 멀어지고 싸움이 치렬해질수록 한명의 인민군전사, 한대의 수송기재가 더없이 귀중한 때였지만 수령님께서는 전쟁과는 거리가 먼 문화재의 구출을 위해 인민군부대들과 수송기재들까지 동원시켜주시는것이였다. 그것은 정녕 민족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 최고사령관의 작전명령이였다.

사실 청소한 우리 공화국의 힘으로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국주의와 싸우는 그 준엄한 시각에 《리조실록》을 구출할 용단을 내린다는것은 누구나 할수 있는 일이 아니였다.

《리조실록》의 구출! 정녕 이것은 민족문화유산을 지나간 력사의 유물로만 대하지 않으시고 그것을 민족의 재부로, 자랑으로 여기시는 절세의 애국자만이 내리실수 있는 대용단이였다.

크나큰 감동을 금치 못하고있는 백남운교육상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전선사령관앞으로 실록구출작전에 동원된 력사학자들의 편의를 최대로 보장할데 대한 자신의 존함을 모신 명령서를 쓰시였다. 그러시고는 어떤 일이 있어도 《리조실록》을 사소한 손상도 없이 구출하여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정녕 무비의 담력과 배짱, 숭고한 애국애족의 뜻을 지니신 절세의 위인을 모신 한없는 긍지와 행복감이 가슴뿌듯이 안겨드는 순간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작전도에 화살을 그으시던 색연필로 《리조실록》구출로정을 하나하나 그어주실 때 그는 불비쏟아지는 그곳으로 마음달리며 기어이 그이께서 아끼시는 민족의 재보를 구출해올 결의를 다지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존함을 모신 신임장까지 받아안은 백남운교육상은 력사학자들과 함께 그날로 서울을 향하여 달리였다.

력사학자들이 현지에 가보니 근 1 800권에 달하는 《리조실록》은 먼지속에서 나딩굴고있었다.

민족의 귀중한 문화유산이 여지없이 유린되고있는 참경앞에서 그들은 북받치는 적개심을 금치 못하며 한책한책을 자동차에 정성담아 실었다.

이렇게 되여 방대한 량의 《리조실록》을 실은 군용차들이 남으로 진격하는 인민군대와는 반대방향인 북으로, 평양으로 질주해오는 꿈같은 광경이 펼쳐지게 되였다.

《리조실록》을 구출해왔다는 보고를 받으신 수령님께서는 못내 기뻐하시며 이제는 우리 민족의 또 하나의 귀중한 문화재가 주인의 손에 들어왔으니 보관관리를 잘하여야 하겠다고 하시면서 어디에 보관하겠는가고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앞으로 안전한 장소를 마련할 때까지 주변의 농촌마을에 보관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올리자 잠시 생각에 잠기시였던 수령님께서는 《최고사령부에다 안전하게 보관하도록 하시오.》라고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리조실록》은 최고사령부 문서고에 보관되였고 전쟁 3년간 극비작전문건들과 함께 무장경호를 받게 되였다.

전쟁승리의 작전도가 마련되는 최고사령부, 거기에 실록을 보관하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결심에는 이 력사문헌을 사소한 손상도 없이 후손만대의 재보로 물려주시려는 그이의 숭고한 애국의 뜻이 어려있었다.

장구한 인류력사에는 자기 민족의 력사를 귀중히 여기고 문화유산을 보호하는것을 장려한 정치가들은 있었어도 우리 수령님과 같이 생사운명을 판가리하는 첨예한 환경속에서 민족문화유산문제를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고 존엄을 빛내이는 문제와 결부시키고 전투병력을 동원하여 옛 력사문헌을 구출해내고 그것을 친히 최고사령부에 보관하도록 하신 그런 위인, 그런 정치가는 없었다.

임진조국전쟁때부터 수백년동안 전란의 시련속에서 버림받던 《리조실록》은 경애하는 수령님의 품에 안겨서야 비로소 자기의 진정한 주인, 위대한 보호자를 맞이하게 되였던것이다.

이끼푸른 성돌도 그 유래를 모르면 막돌로 버림받고 선조들의 지혜가 어린 고전도 그 뜻을 모르면 낡은 종이장이 되고마는 법이다.

전화의 불길속에서 《리조실록》이 구출된 때로부터 몇해가 지난 1958년 9월 어느날 공화국창건 10돐기념 과학전람회장에 나오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곳에 전시된 《리조실록》원본을 보게 되시였다.

일기체형식에 수백년을 내려오며 변형된 여러가지 문체를 다 담고있는 독특한 조선식한문으로 씌여져있는것으로 하여 학계에서조차 난해한 고서로 인정되여 누구도 감히 번역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있는 사실을 아시게 된 그이께서는 이것은 아주 귀중한 책이라고, 전문가들을 위해서는 복각하고 일반대중을 위해서는 번역하여야 하겠다고 단호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그렇지만 《리조실록》번역사업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였다.

500여년간의 리조봉건국가의 정부일지인 《리조실록》은 총 1 763권(근 900책)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이였다. 당시 력사편찬에서 앞섰다고 하던 명나라의 《황명실록》이 294년간의 력사를 501책에 담고있는 사실은 《리조실록》의 방대함을 실감케 한다.

이처럼 방대하고 어려운 실록번역사업을 국가의 중대사로 내세워 추진하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옛 왕조의 낡은 문서보따리나 번역하여 무슨 필요가 있는가고 하면서 훼방을 노는 일부 편협한자들의 책동으로 이 사업이 진척되지 못하고있을 때에는 《리조실록》을 오늘 번역출판해놓지 않으면 먼 후날에 가서는 한사람도 이 책의 글줄을 읽어내지 못하게 될것이라고, 후대들을 위해서라도 반드시 이 책을 모두 번역출판해놓아야 한다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예지와 해박한 지식, 현명한 령도가 있어 마침내 1981년 12월에 실록번역사업이 끝나 리조 500여년, 기나긴 18만여일의 일기를 수록한 《리조실록》이 마침내 자기의 전모를 세상에 드러내게 되였다.

400책의 번역본이 서가에 주런이 꽂혔을 때 수령님의 집무실은 명절처럼 흥성이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금수산에는 세상에 없는 보물이 있으니 그것은 저 400책의 《리조실록》들이라고 하시며 만시름을 잊으신듯 만면에 해빛같은 환한 미소를 지으시였다.

력사의 풍운속에 영영 사라질번 했던 《리조실록》을 구원해주시고 세계 그 어디에서도 볼수 없는 민족공동의 재보로 빛내여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무슨 말로 다 칭송할수 있으랴.

민족문화유산에 바쳐진 김일성주석의 거룩한 한평생을 전하는 증견자인양 빛을 뿌리는 《리조실록》, 그 부피두터운 갈피갈피마다에는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며 통일조국의 영원한 태양이신 경애하는 수령님의 위대한 숨결이 맥박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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