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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6) 중에서 2. 2)초강도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으시며 -새롭게 태여난 인민의 봉사전당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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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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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북도서 『은혜로운 사랑의 태양』(6) 중에서

 

2. 강행군의 열풍을 일으키시며

초강도강행군길을 끊임없이 이으시며

새롭게 태여난 인민의 봉사전당들

 

주체97(2008)년 4월, 민족최대의 명절인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새롭게 개건된 대동문영화관과 옥류관, 청류관이 준공되였다.

이름있는 문화 및 사회급양봉사기지들이 짧은 기간안에 최상의 수준에서 훌륭하게 변모된 놀라운 현실앞에서 사람들은 누구나 다 경탄과 기쁨을 금치 못했다.

대동문영화관만 놓고봐도 종전의 건물외부형식을 그대로 살리면서 보다 세련시켰는가 하면 연건축면적도 종전의 2배나 더 크게 형성하였을뿐만아니라 최상급의 음향설비와 영사설비를 비롯하여 모든 관람홀들과 전시홀, 도서매대 등 건물내부를 완전히 일신시킨 현대적인 문화정서생활기지로 새롭게 태여났다.

평양의 자랑인 옥류관과 모란각 그리고 보통강반의 특색있는 청류관도 건축내부전반의 조형화, 예술화가 더욱 높은 수준에서 보장되고 최신식봉사설비들과 모든 조건들을 원만히 갖춘 현대적인 급양봉사기지로 자기의 모습을 달리하였다.

이것은 어버이수령님의 념원을 꽃피우시여 인민들에게 보다 문명하고 문화적인 생활조건을 마련해주시려는 위대한 김정일장군님의 고귀한 헌신이 낳은 빛나는 사랑의 열매들이였다.

돌이켜보면 훌륭히 개건된 봉사기지들은 한평생 인민을 제일로 위하신 어버이수령님의 따뜻한 사랑의 손길이 깃들어있는 귀중한 유산들이였다.

사람들은 지금도 벽돌 한장, 세멘트 한삽이 귀하던 전후의 어려운 시기에 인민들의 문화정서생활을 위해 수도의 한복판에 영화관을 먼저 건설하도록 하시고 친히 그 이름까지 《대동문영화관》으로 명명해주시였을뿐아니라 준공식날에는 해빛같은 미소를 지으시며 기뻐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모습을 잊지 못하고있다.

대동강의 맑은 물이 감돌아흐르는 옥류벽우에 하늘을 날을듯 푸른 합각지붕을 떠이고 우아하게 솟아있는 옥류관도 어버이수령님의손길에 의해 마련된것이다.

1958년 8월 어느날 이른새벽 한척의 배가 대동강기슭을 천천히 지나가고있었다.

그 배에 바로 어버이수령님께서 타고계시였다.

전쟁의 상처를 채 가시지 못한 평양의 정경을 가슴아픈 눈길로 바라보시던 수령님께서는 반월도앞에 배를 세우시고 대안에 병풍처럼 펼쳐져있는 바위를 한동안 눈여겨 살펴보시다가 집터로서는 아주 좋은 자리라고, 저 옥류벽우에 대동강풍치에 어울리면서도 마치 물에 떠있는것처럼 보이는 조선식료리집을 번듯하게 건설하여 인민들에게 안겨주자고 하시며 그 터전을 잡아주시였다.

그후 옥류관이 훌륭하게 일떠서고 그곳에서 인민의 행복넘친 웃음소리가 대동강물결에 실려 랑랑하게 흐르던 어느날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경치도 수려하고 건물도 아름답고 이름까지 좋으니 우리 인민들이 어찌 옥류관을 사랑하지 않겠는가고, 나는 우리 인민들에게 이처럼 좋은 집을 지어준것이 제일 기쁘다고 못내 만족해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의 뜨거운 사랑이 어려있는 봉사기지들을 더 훌륭하게 꾸리고 인민들에게 보다 좋은 혜택이 차례지도록 하기 위해 언제나 마음을 쓰시였다.

모든것이 부족하던 시련의 그 시절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을 하느라고 수고한 우리 인민들에게 맛보이면 얼마나 좋아하겠는가고 하시며 그 옛날 왕족들만 궁전에서 해먹던 어북쟁반국수 못지 않은 고기쟁반국수를 옥류관에서 잘 만들어 인민들에게 봉사하도록 은정어린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이 땅우에 강성대국의 려명이 밝아오고 행복의 웃음소리 커갈수록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에 대한 사랑은 더욱 깊어만 갔다.

2007년 삼복철의 어느날 장군님께서는 대동문영화관을 새 세기의 요구에 맞게 개건할데 대한 구상을 펼쳐주시고 그 영예로운 임무를 군인건설자들에게 통채로 맡겨주시였다. 그리고 공사의 첫시작부터 그 진행정형에 대해서 수시로 알아보시고 구체적인 지도를 주시였으며 다음해인 2008년 1월에는 대동문영화관은 내가 올해 태양절을 맞으며 수도시민들에게 줄 선물로 마련하는 대상인것만큼 건축학적으로는 세련되고 화려하면서도 리용에서는 인민들의 기호와 미감에 맞으면서도 편리하게 건설하여야 한다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대동문영화관을 만점짜리 창조물로 완성하시려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얼마나 심혈을 기울이시였는지 사람들은 다는 모르고있다.

영화관바닥에 미정석을 까는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쇠붙이 같은것에 석재가 긁히울수 있는 결함을 헤아려보시고 대동문영화관바닥에 까는 돌은 돈을 좀더 들여서라도 온전하게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관람자들에게 친근감을 불러일으키는 영화관 중앙홀 천정의 조명등에도 장군님의 세심한 손길이 닿아있다.

원래 설계가들과 건설자들은 영화관 중앙홀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할 목적으로 중앙홀 천정에 무리등을 설치하였었다.

이러한 사실을 아시게 된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당 일군에게 대동문영화관은 공공장소이므로 무리등이 맞지 않는다고 하시며 다른 조명으로 교체하도록 세심히 보살펴주시였다.

그이의 말씀에 따라 무리등대신 원형면조명등이 설치되였는데 그렇게 하니 중앙홀이 현대감이 나게 더 환해지고 공공장소로서의 영화관의 체모에 더 잘 어울리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이렇듯 다심한 사랑의 손길에 떠받들려 대동문영화관은 물론 옥류관과 모란각, 청류관은 먼 후날에도 손색없을 창조물로 개건될수 있었다.

주체97(2008)년 6월 어느날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평양시의 개건된 문화 및 급양봉사기지들을 현지지도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근로자들이 다양한 문화정서생활을 마음껏 누릴수 있는 현대적인 문화전당으로 변모된 대동문영화관이며 대중급양봉사기지로서의 면모를 훌륭히 갖추고 화려하게 개건된 옥류관과 모란각, 청류관의 외부와 내부를 일일이 다 돌아보시였다.

어느 대상이라 할것없이 누가 보아도 최상의 수준에서 황홀하게 꾸려졌지만 인민들이 리용할 봉사기지들이 한점의 흠도 없는 완벽한것으로 되게 하시려는 그이의 높은 요구는 실로 끝이 없었다.

대동문영화관의 2호관람홀을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 관람홀의 앞부분 관람석이 영사막으로부터 너무 가까운것을 헤아리시고 이 관람홀의 맨 앞줄 관람석에서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화면이 너무 가까와 어지러울수 있고 화면을 올려다보아야 하므로 목이 아플수도 있다고 지적하시였다.

그러시고는 영화관의 관람홀을 앞뒤로 길게 만드는것은 낡은 방식이라고, 앞으로 영화관을 꾸릴 때에는 관람홀을 앞뒤길이는 줄이고 량옆으로 넓게 하며 관람석을 영사막을 중심으로 반원형으로 배치하여 사람들이 어디에 앉아 영화를 보아도 화면이 잘 보일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고 전문가들도 생각지 못했던 문제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시였다.

그뿐이 아니였다. 옥류관을 돌아보시던 장군님께서는 누구도 관심을 두지 못했던 어느 한 홀의 바깥창문 웃부분에 알릴듯말듯하게 나있는 얼룩을 발견하시고는 개건공사를 하면서 새 유리를 바꾸어 끼우지 않고 원래 있던것을 그대로 두다보니 손상이 되여 그런것 같다고 하시며 창문에 새 유리를 바꾸어 끼우는것이 좋겠다고, 창문 웃부분에는 흐린유리를 끼우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이르시였다.

청류관에 가시여서도 기본현관홀에 잇닿아있는 대중식사홀을 보시고 기본현관으로는 수많은 사람들이 계속 나들겠는데 대중식사홀에서 식사하는 사람들이 들여다보이게 해서는 안된다고 깨우쳐주시였다.

깊은 자책속에 잠긴 일군들은 때늦게나마 자신들을 돌이켜보며 모든것을 보고 평가하시는 그이의 기준이 무엇인지 다시금 명백히 깨닫게 되였다.

《인민을 위하여 복무함!》, 이것이 바로 장군님의 평가기준이였으며 그래서 그이의 요구성은 그처럼 높은것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옥류관의 2층의 어느 한 호실에 들리시였을 때였다.

넓고 환하게 꾸려진 방을 보시고 장군님께서는 옥류관일군에게 물으시였다.

《여기는 연회장이요?》

《장군님, 여기는 연회장이 아니라 지난 시기에 있던 간막이를 없애고 꾸린 대중식사칸입니다.》

그 넓은 방에 한가득 둘러앉아 맛있게 음식을 드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지시는듯 흐뭇한 미소를 담으신 장군님께서는 《2관 2층 2호실이 대중식사칸이라는데 방이 큼직하여 좋습니다. 지난 시기 식사칸에 간막이를 하였던것을 없애고 대중식사칸으로 꾸렸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기를 잘하였습니다. 인민을 위하여 봉사하는 식당의 식사칸은 마땅히 이렇게 되여야 합니다.》라고 치하하시였다.

그 말씀을 음미하며 일군들은 아무리 번쩍거리고 화려한것이라 할지라도 인민을 위하고 인민을 위해 복무하는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것이라는 그이의 숭고한 인민적가치관을 다시금 새겨안게 되였다.

이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풍치수려한 모란봉의 경치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며 멋들어지게 꾸려진 모란각도 돌아보시였다.

모란각에서 국수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음식들을 봉사한다는 설명을 들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에게 손님들이 많은가고 나직이 물으시였다.

손님들이 많다는 그 일군의 대답을 들으신 그이께서는 잠시 모란봉을 둘러보시더니 모란각을 국수집으로 운영하는것은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였다.

일군들에게는 예상하지 못하였던 뜻밖의 지적이였다.

왜냐하면 모란각은 여태 옥류관처럼 국수를 만들어 시민들에게 봉사해왔으며 그곳이 옥류관의 분관이라는 의미도 그렇게 해석해왔기때문이였다.

영문을 몰라하는 일군들에게 그이께서는 국수를 눌러 봉사하게 되면 육수와 꾸미를 만들 때 뜨물이 적지 않게 나오게 되는데 그것을 바로 처리하지 못하는 경우 인민의 문화휴식터인 모란봉의 자연환경에 손상을 줄수 있다고 일깨워주시였다.

그러시면서 모란각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청량음료와 빵, 꽈배기, 지짐, 통닭구이 같은것을 봉사해줄수 있다고 음식의 종류까지 세세히 가르쳐주시였다.

인민들을 위한 일이라면 하나에서 열, 백을 헤아려 보다 훌륭한 조건을 마련해주려고 애쓰시는 그이의 진정이 어려와 일군들은 또 한번 충격을 받았다.

식당운영과 봉사활동에서 지침으로 되는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번에는 집기류소독문제를 화제에 올리시였다.

《식당들에서는 손님들에 대한 봉사를 잘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소독을 철저히 하고 위생을 잘 지키는것이 더 중요합니다. 식당들에서 1회용나무저가락을 쓰는것은 별문제이지만 그릇이나 금속으로 만든 수저는 반드시 소독하여야 합니다.》

옥류관을 잘 꾸리는것도 중요하지만 인민들이 마음놓고 찾아가 음식을 먹을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는 깊은 의도의 말씀이였다.

이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식당들에서는 음식그릇뿐아니라 수저 같은것들도 철저히 소독하여 인민들의 건강에 해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공기소독과 물소독을 비롯한 여러가지 소독방법을 잘 배합하여 소독대책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옥류관은 사회급양봉사의 전당인것만큼 위생설비와 소독설비를 완전무결하게 꾸려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게 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천만금을 들여 세상에 자랑할만 한 인민의 봉사전당들을 마련해주신것만도 분에 넘치는데 해당 일군들도 생각지 못한 집기류들의 소독문제까지 마음을 쓰신 위대한 장군님은 진정 인민을 제일로 위하시는 자애로운 어버이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녀가신 후 옥류관을 비롯한 봉사기지들은 보다 완벽하게 꾸려지게 되였다.

훌륭히 개건된 봉사전당들의 새 모습에 이끌려 저저마다 찾아가고 흐뭇하게 봉사를 받고 너무 기뻐서 어쩔줄 모르는 인민들의 행복한 모습.

그것은 정녕 오직 한마음 인민을 위하시는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신 위대한 장군님의 애민헌신에 의해 펼쳐진 사랑의 화폭이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나의 인생을 쥐여짜면 인민이라는 두 글자밖에 나올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나 김정일우에 인민이 있고 김정일 인민의 아들이라고 절절히 교시하시였다.

거목에는 뿌리가 있고 대하에는 시원이 있듯이 위대한 장군님의 모든 사색과 활동, 투쟁과 업적은 이렇게 인민을 위하여라는 이 하나의 뜻, 하나의 념원에서 시작되고 꽃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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