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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일심단결의 나라』중에서 4. 5) 대국상의 나날에 -그것은 결코 비애의 눈물만이 아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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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09-07

본문

이북도서 『일심단결의 나라』중에서

 

4. 일심단결의 새시대

5) 대국상의 나날에

그것은 결코 비애의 눈물만이 아니였다

 

조선인민은 1994년 7월 8일 너무도 뜻밖에 위대한 김일성주석을 잃는 민족의 대국상을 당하였다.

이날 새벽 2시, 밤이 깊도록 집무를 보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심장이 고동을 멈추었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급보를 도저히 믿을수 없으시였다. 5일과 6일에만 하여도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경제부문 책임일군협의회를 지도하시였고 이어 7일에는 아침 산책시간까지 바쳐가시며 조국통일의 대문을 활짝 열어제낄 력사적인 문건을 하나하나 검토완성하여 비준해주시였었다.

그 문건과 관련하여 7월 6일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장군님께 전화를 걸어오시여 제기되는 문제들을 상론해주시였다.

그날 수령님께서는 당의 의견을 받자고 한다고 하시면서 북남관계에서 제기되는 문제에 대하여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결심하시면 당에서는 그대로 할것이라고 장군님께서 말씀드리자 수령님께서는 그러면 당에서 승인한것으로 보고 활동하겠다고 말씀하시였다.

그날의 전화대화가 수령님과 장군님과의 마지막통화가 되고말았다.

7일 저녁에도 수령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인민을 위해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내가 일손을 놓으면 동무네 최고사령관에게 그만큼 부담을 더 주게 될것이다, 김정일동지가 나라의 크고작은 모든 일을 혼자 걸머지고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있는가, 나는 김정일동지가 인민을 위하여 밤새워 일하는걸 보면 잠시도 쉴수가 없다고 말씀하시며 서거하시기 전까지도 집무를 보시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 한달음에 어버이수령님께서 계시는 곳으로 달려가시였다. 수령님께서는 한생의 피로를 푸시는듯 조용히 누워계시였다. 장군님께서는 따뜻한 체온이 그대로 어려있는 수령님의 손목을 잡으시고 목메여 부르시였다. 불러도 응답을 모르시는 수령님의 령전에 서시여 그이께서는 오래도록 뜨거운것을 삼키시였다. 심장이 천갈래만갈래로 찢어지는것만 같으시였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뒤집힌다 하여도 그토록 상심하시지는 않았을것이였다.

이날 아침 금수산의사당에서는 당중앙위원회 정치국비상회의가 열리였다.

7월 9일 낮 12시, 중대방송으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인민위원회(당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당시)은 《전체 당원들과 인민들에게 고함》을 발표하여 온 나라 전체 인민들에게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비보를 알리였다.

부고에 이어 김정일장군님을 위원장으로 하는 국가장의위원회 구성이 발표되고 7월 8일부터 17일까지를 애도기간으로 하며 어버이 수령님과 영결하는 추도대회를 7월 17일 평양에서 엄숙히 거행한다는 국가장의위원회 공보가 발표되였다.

수령님께서 서거하시였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에 온 나라가 비애에 잠겼다. 인민들과 군인들, 청소년학생들은 비분절통함을 누르지 못하여 땅을 치고 가슴을 치며 오열을 터뜨렸다. 인민의 슬픔은 하늘에 닿고 온 나라는 울음의 바다, 눈물의 바다를 이루었다.

산천초목도 비분에 떨며 몸부림쳤다. 하늘의 태양도 자취를 감추었는가, 민족의 위대한 어버이를 잃은 이 나라 인민의 슬픔이 비구름으로 엉키고 그것이 그대로 눈물이 되여 이 세상천하를 다 적시려는듯 무더기비가 쏟아져내렸다.

대줄기같이 퍼붓는 소낙비를 맞으며 수도시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 만수대언덕으로 허둥지둥 달려갔다.

그 수는 초와 분마다 늘어나 오후 2시경에는 동상앞 층계와 대통로를 꽉 메웠다.

다음날 첫새벽까지는 30여만명의 수도시민들이 수령님의 동상을 찾아와 눈물을 뿌리였다.

각 도소재지와 혁명사적지를 비롯한 위대한 수령님의 동상을 모신 곳들, 조국의 최북단인 온성으로부터 분계연선의 작은 마을의 집집마다에서 민족의 어버이를 애타게 부르는 인민들의 곡성이 터져나왔다.

《괴나리보짐을 지고 두만강을 건느고 현해탄을 넘던 이 나라 백성들의 눈물을 다 닦아주신 수령님, 이젠 통일의 날도 멀지 않았는데 그날을 두고 가시면 어찌하옵니까. 수령님, 돌아오십시오.》

《다음번에 와서는 원료기지를 꼭 보아주겠다고 하신 3년전의 그 약속을 남겨두시고 가시면 어찌하옵니까. 일구월심 기다리는 저희들을 생각하시여 깨여나주십시오.》

남녀로소모두가 상제가 되여 수령님의 령전에서, 수령님의 동상과 사적비앞에서, 추모행사장들에서 상실의 아픔에 몸부림쳤고 혼절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탁아소, 유치원의 어린이들도 아버지대원수님을 찾으며 그 자그마한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였다.

금수산의사당 조의식장으로 비애에 잠긴 사람들의 물결이 낮에 밤을 이어 끝없이 흘러들었다.

항일혈전의 그날에 높이 추켜드신이래 언제나 투쟁과 승리의 기치로 삼아오신 혁명의 붉은 기폭을 덮으시고 조용히 누워계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령전에서 사람들은 인류의 태양을 잃은 크나큰 절통함과 설음이 북받쳐올라 수령님을 목놓아 부르며 울음을 터뜨렸다. 인민들이 흘리는 마를줄 모르는 피눈물이 그이의 령구를 모신 홀바닥에 그대로 점점이 새겨지는듯 하였다.

전국각지의 인민들이 어버이수령님을 뵈오러 모여오는통에 평양행 려객렬차들은 초만원을 이루었다.

수령님께서 여러차례 다녀가신 황주 긴등벌의 어느 한 로인내외는 우리 수령님께서 잠시 주무시고계실텐데 깨여나시면 드리겠다면서 터밭에서 가꾼 동이만 한 수박을 초물구럭에 걸머지고 100여리길을 걸어왔다.

시간이 흐르고 날이 갈수록 조객들이 늘어갔다. 인민들은 수령님과 영결하는 시간만이라도 늦추어달라고 청원하면자애로운 어버이의 그 모습을 단 한번만이라도 직접 뵈옵게 해줄것을 간절히 요청하였다.

인민들의 애절한 마음을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에서 주인은 로동자, 농민들인데 인민대중이 바라는대로 해야 한다고 하시며 공보를 다시 발표하도록 하시였다.

그리하여 7월 15일 국가장의위원회 두번째 공보가 발표되고 위대한 수령님의 령구를 찾아오는 조객들을 7월 18일까지 계속 맞이하며 영결식을 7월 19일에, 추도대회를 7월 20일에 진행한다는것을 알리였다. 영결식날자를 미루면서까지 조의기간을 연장한 일은 세계애도사상 전례가 없는 일이였다.

이 조치에 의하여 평양시민들만이 아닌 지방의 수많은 인민들과 해외의 동포들이 수령님의 령전에 찾아와 조의를 표시하였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인민들과 슬픔을 함께 나누시면서 자기 수령에 대한 도덕의리를 지킬줄 아는 숭고한 도덕관을 지닌 인민들을 보시며 커다란 충격을 받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지 며칠째 되는 어느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시내를 돌아보시면서 수령님의 동상이 모셔져있는 만수대언덕쪽으로 가시였다. 교양마당에서는 수많은 평양시민들이 비가 내리는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령님의 서거에 애도의 뜻을 표시하고있었으며 교양마당의 계단아래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서서 자기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들가운데는 수령님의 동상에 화환을 드리려고 차례를 기다리는 몇명의 청년대학생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온몸이 비에 흠뻑 젖으면서도 웃옷을 벗어 화환에 씌워 비에 젖지 않게 하려고 애쓰고있었다.

장군님께서는 그 광경을 한참동안 보시면서 청년대학생들의 소행이 너무도 기특하여 눈물을 흘리시였다. 새 세대 청년들의 기특한 충정심에 격해지는 마음을 어쩔수 없으시였던것이다.

위대한 김정일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지 100일이 되는 날 일군들을 만나신 자리에서 이때를 감회깊이 돌이켜보시면서 이번 애도기간에 우리의 수령, 당, 대중의 일심단결의 위력이 얼마나 공고한가 하는것이 힘있게 시위되였는데 이런 공고한 일심단결을 이룩하여놓으신것은 수령님의 위대한 업적이라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애도기간 온 겨레가 공화국의 인민들과 함께 슬퍼하고 함께 울었다.

자나깨나 위대한 수령님을 통일의 광장에 모실 날만 기다리던 남녘인민들의 슬픔과 비애도 격랑을 일으켰다.

대전교도소의 비전향장기수들을 비롯한 애국자들이 무기한 애도단식투쟁에 들어갔고 서울과 광주, 대전과 부산 등 각지에서 분향소를 꾸려놓고 추모제를 지내였다.

《한총련》을 비롯한 애국적민주단체들과 괴뢰국회안에서까지 북에 조문단을 파견할것을 주장해나섰고 5명으로 구성된 범민련 남측본부결성준비위원회의 조문대표단이 평양을 향해 떠났다. 그들은 경기도 고양시에서 괴뢰도당이 앞길을 가로막자 《북에 조문 간다. 길 비켜라》라고 쓴 구호를 내흔들며 완강히 맞서싸웠다.

이국땅에서 사는 동포들도 민족의 어버이를 잃은 슬픔에 몸부림쳤다.

혹가이도로부터 규슈에 이르는 온 일본땅에서, 중국 동북지방으로부터 유럽의 한끝까지 그리고 대양건너 머나먼 미국과 카나다땅에서 500만을 헤아리는 해외동포들이 그리운 조국땅을 향해 머리를 숙이고 피눈물을 흘리였다.

참으로 온 강산이 눈물에 젖었다.

그러나 그 눈물은 결코 비탄의 눈물이 아니였다. 그것은 수령, 당, 대중이 혼연일체를 이룬 우리 조국, 우리 민족의 통일단결의 참모습이였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생전에 남기신 유훈대로 김정일장군님을 받들어 주체위업을 끝까지 실현하려는 우리 인민과 온 겨레의 굳은 의지와 맹세의 분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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