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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 1』중에서 1장 1.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기발아래 -애국심을 굳게 믿으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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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작성일17-05-16

본문

이북도서 김일성주석 통일애국의 한평생 1』중에서

 

 

제    1    장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길에서

 

1.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기발아래

 

애국심을 굳게 믿으시고

 

4월남북련석회의는 우리 겨레의 통일운동사에 지울수 없는 자욱을 아로새긴 민족의 대회합이였다. 해마다 4월이 오면 온 겨레는 남북련석회의가 열리던 그날의 환희를 감회깊이 새겨보군 한다.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 첫날회의때였다. 백발수염을 날리며 한 로정객이 개회사를 하기 위해 연단에 올랐다.

《여러분, 우리 3천만 조선민족이 분렬될 위험이 박두한 이때에 우리 민족과 조국을 통일시키며 하루바삐 완전한 독립국가를 세우기 위하여 남북조선의 여러 대표가 한자리에 모인 이 력사적회의를 개회함에 있어서 년령이 제일 많다 하여 내가 개회사를 한마디 하게 된것은 큰 영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날의 그 영광의 자리를 차지한 사람이 바로 당시 71살이였던 김월송선생이였다.

경상북도 안동의 한 봉건량반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한때 홍범도와 같은 사람들과 의병운동도 해보고 중국에 건너가 민족주의자들의 상하이림시정부에도 관여하고 완고한 보수파들의 정의부에도 참여하여 더부살이 《애국》도 하며 이곳저곳을 헤매였지만 어디서도 독립의 길을 찾을수 없었다.

그러던 그는 상하이를 떠나 화디엔에  와서 그러던 그는  상하이를 떠나 화디엔에 와서 독립군  군사학교 교원으로 있을 때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을  만나  애국적영향을  받으면서 참다운 조선독립의 길을 내다보게 되였으며 이 과정에 위대한 김일성장군님에 대해서도 알게 되였다.

나라가 해방되자 귀국의 길을 모색하던 김월송선생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그를 찾기 위해 파견하신 일군들을 만나 마침내 조국에 돌아오게 되였다.

1946년 6월 21일이였다.

김월송선생이 조국에 돌아왔다는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친히 몸가까이 불러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을 만나뵈온 자리에서 그는 20성상 풍찬로숙하며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싸우느라고 얼마나 고생을 하시였는가고 인사의 말씀을 올리였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우리가 일제를 반대하여 무장을 잡고 싸운것은 조국의 광복을 이룩할 뜻을 품고 혁명의 길에 나선 사람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을 한것이라고, 저보다도 년로한 몸으로 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싸운분들이 고생을 더 많이 하였을것이라고, 이렇게 선생을 만나고보니 지난날의 일들이 감회깊이 회상된다고 말씀하시였다.

30여년세월 이국땅에서 고생을 하다가 꿈결에도 잊지 못하던 해방된 조국에 돌아온 그는 눈물을 머금고 말씀올리였다.

《오늘 장군님을 만나뵈오니 조국의 해방을 위하여 투쟁하시다가 해방된 조국을 보지 못하고 이국땅에서 세상을 떠나신 장군님의  부모님들에 대한 생각이 간절해집니다. 정말 그분들께서 이 자리에 함께 계신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그 말을 들으신 수령님께서는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우리 민족이 당한 가슴아픈 일들을 무슨 말로 다 이야기할수 있겠는가고, 참으로 일제식민지통치하에서 조선인민이 걸어온 길은 수난자의 피눈물나는 간고한 로정이였다고, 그러나 우리 인민이 걸어온 이 길은 조국의 광복과 민족의 해방을 위한 영광스러운 투쟁의 력사이라고, 우리는 피바다에 잠긴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구원하기 위하여 조국광복의 기치를 높이 들고 청춘도 생명도 가정도 다 바쳐 싸운 혁명가들과 애국적인민들의 숭고한 혁명정신과 빛나는 위훈을 영원히 잊을수 없다고 하시였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나라가 해방된 오늘 선생은 한평생 변함없이 간직해온 애국충정을 마음껏 꽃피울수 있게 되였다고 하시며 선생은 삼천리강토에 민주주의 새 조선을 건설하는 사업에서 수고를 많이 하셔야 하겠다고 믿음어린 말씀을 주시였다.

당시 북반부인민들은 자유와 해방의 기쁨속에서 자신이 선택한 진보적민주주의길을 따라 부강한 자주독립국가를 건설하기 위하여 적극 투쟁하고있었으며 해방된지 1년도 못되는 기간에 새 조선건설에서 커다란 성과를 이룩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밑에 1946년 2월 8일 인민의 정권인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를 창설하였으며 정치, 경제, 문화의 각 방면에서 나라의 민주주의적발전과 완전자주독립을 위한 기초를 튼튼히 축성해나가고있었다.

인민들은 정권의 주인으로서 나라의 정사에 자유롭게 참가하게 되였고 력사적인 토지개혁이 실시된 결과 인구의 80%를 차지하는 농민들이 토지의 주인으로 되였다. 또한 일제가 파괴한 공장, 기업소들이 적지 않게 복구되여 돌아가기 시작하였고 도처에 학교들이 설립되여 운영되고있었으며 어렵던 식량문제가 점차 해결되여 인민들의 생활도 안정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일제식민지통치의 후과가 가셔지고있었으며 통일적민주주의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튼튼한 기지로 전변되여가고있었다.

이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후 북조선에서 난관을 극복하고 짧은 기간에 큰 성과를 달성할수 있은것은 전체 인민들이 진보적민주주의의 길을 따라 굳게 단결하여 새 조국건설에 한결같이 떨쳐나선데 기인된다고, 진보적민주주의의 길은 자유와 독립의 길이며 단결은 전진과 승리의 담보이라고, 북조선인민들은 실생활을 통하여 진보적민주주의의 길만이 우리가 나아갈 참다운 진로라는것을 확신하고 굳게 단결하여 새 조선건설에 모두다 떨쳐나서고있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우리 민족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위대한 변혁이 이룩되고 부강한 자주독립국가건설의 기틀이 마련되여가고있는 지금이야말로 힘있는 사람은 힘을 내고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을 내고 돈있는 사람은 돈을 내여 일할 때입니다.》

수령님의 교시를 자자구구 새겨가며 자기가 할 일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던 그는 형세를 봐서 남조선에 나가 통일적민주주의정부를 세우기 위한 투쟁에 이바지해보려고 한다고 말씀드렸다.

그러자 수령님께서는 선생의 진의를 충분히 리해할수 있지만 남조선의 정세가 그것을 허락치 않는다고 하시면서 남조선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지난 시기 나라를 찾자고 고생도 많이 하였고 년세도 많은 선생을 백주에 애국적민주인사들에 대한 테로와 학살이 감행되고있는 남조선에 당장 내보낼수 없다고 하시면서 여기서 함께 일을 하다가 정세가 허락되면 남조선에 나가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에게 건국사업은 어떤 특정한 정당이나 몇몇 사람의 힘만으로는 수행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그렇기때문에 우리는 해방직후부터 공산주의자이건 민족주의자이건, 정견과 신앙의 차이가 있건없건 관계없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각계각층의 모든 애국적인민들을 묶어세우는 민주주의적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할데 대한 방침을 내놓고 그 실현을 위하여 적극 투쟁하고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어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남북조선의 모든 민주주의적정당, 사회단체들과 각계각층의 애국적민주력량은 다같이 민주주의적민족통일전선을 결성하기 위하여 백방으로 노력하여야 할것입니다. 우리는 선생과 같은분들이 각계각층의 애국적민주력량을 통일전선에 묶어세우는데서 많은 역할을 하여야 하리라고 생각합니다.》

고목이나 다름없는 자기를 그렇듯 크게 믿고 내세워주시는 수령님의 은정어린 그 교시에 선생의 가슴은 말할수 없는 격정으로 설레였다. 선생은 삼천리금수강산 내 나라를 위해 애국충정을 다하겠다고 심장에 고패치는 결의를 말씀드리였다.

이날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에 있는 그의 가족들을 데려오도록 하겠다는 약속도 하여주시며 그때까지 댁에 함께 머물도록 하라고 이르시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극진한 보살피심속에서 온 가족이 모여 새살림을 차리고 행복한 생활을 누려갈수록 김월송선생은 남조선에서 고생하고있는 동료들에 대한 생각이 더욱 간절하였다. 그는 38°선을 넘어가 남조선의 정계인사들과 옛친구들에게 북의 현실을 알려주고 그들로 하여금 위대한 장군님의 높은 뜻을 받들어 통일애국의 한길로 나서도록 하려는 결심을 스스로 품게 되였다.

이리하여 그는 고령의 몸이지만 남조선에 나가 각계각층의 애국적민주력량을 통일전선에 묶어세우기 위해 열정을 바쳐 일하였다.

바로 이러한 시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북조선 정당, 사회단체 대표자련석회의소집을 호소하시면서 닥쳐온 난국을 타개하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정견과 리념, 신앙의 차이에 관계없이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함께 손잡고 나갈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남북조선의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묶어세우고 반미구국통일전선을 형성하여 조국통일의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으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열렬한 호소는 남조선정계에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위대한 수령님의 애국의 호소를 커다란 감격속에 접한 김월송선생은 회의에 참가하기 위하여 북으로의 발걸음을 재촉했다.

드디여 력사적인 남북련석회의가 열리는 뜻깊은 시각이 왔다.

참가자들이 일제히 일어서고 장내가 떠나갈듯 한 우렁찬 박수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민족의 태양이시며 영명한 령도자이신  김일성장군님께서 만면에 해빛같은 웃음을 담으시고 회의장에 나오시였다. 민족의 찬란한 미래가 비껴있는듯 한 젊으신 장군님의 름름한 모습을 지척에서 뵈옵는 참가자들은 끝없는 환희와 흥분에 휩싸여있었다.

잠시후 장내에 엄숙한 분위기가 떠도는 가운데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개회사를 할데 대한 과업을 받고 처음으로 연단에 올라선 김월송선생은 해방된지 3년이 되도록 독립을 못하고있는것은 미제국주의자들이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려고 하기때문이며 리승만이나 김성수 같은 놈들이 송병준이나 리완용 같은 매국노들의 본을 받아 우리 나라를 또 팔아먹으려고 하기때문이라고 준렬히 규탄하고 침략자와 매국노들을 반대하여 모든 애국세력이 총단결하여 싸우자고 호소하였다.

개회사를 마쳤을 때 장내에 우렁찬 박수소리가 터져올랐다.

만족한 웃음을 담으시고 자기에게 박수를 보내주시는 김일성장군님의 모습이 해빛마냥 가슴뜨겁게 안겨왔다.

정녕 환하게 웃으시는 그이의 모습은 고목에도 꽃을 피우는 태양의 모습이였다. 애국충정 고이 간직하고 이국땅을 방황하여온 김월송선생은 자기를 영광의 높은 연단에 세워주신 그이의 고마운 은정을 정녕 잊을수 없었다.

믿음에 신의로 보답하는것은 인간의 마땅한 도리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긴다는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신의를 위해 목숨까지도 바칠줄 아는 인간이야말로 참다운 인간이다.

조국해방전쟁의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였을 때였다. 전선형편은 시시각각으로 어려워지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선과 후방의 중하를 한몸에 지니신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친히 강원도당의 한 책임일군에게 전화를 거시여 금강산에 김월송부부가 살고있는데 그들을 곧 안전한 지대로 자리를 옮겨 잘 돌봐주도록 하라고 간곡히 당부하시였다.

그런데 안내원이 제때에 현지로 가닿지 못한 관계로 1950년 10월초 어느날 밤 김월송선생은 갑자기 적들에게 체포되게 되였다. 그는 위대한 수령님께 드리는 마지막편지를 쓴 뒤 몰래 집을 빠져나와 구룡폭포의 검푸른 물결속에 몸을 던졌다. 뒤늦게야 허겁지겁 그를 잡으려고 달려나온 적들은 골짜기를 울리며 하늘가로 메아리쳐가는 김일성장군 만세!》의 웨침소리에 전률하지 않을수 없었다.

생의 마지막순간에도 민족의 위대한 태양을 부르던 인간, 태양을 따르는 자기의 순결한 넋을 지켜 목숨도 서슴없이 바친 인간의 최후의 모습은 이렇듯 숭고한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비장한 최후에 대한 보고를 받으시고 일군들에게 월송선생은 해방후 조국에 돌아와 년로한 몸으로 나라의 통일을 위해 헌신한 참다운 애국자였다고, 통일의 날을 보지 못하고 간것이 가슴아프다고 하시며 애석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주체57(1968)년 9월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김월송선생을 잊지 않으시고 그를 항일혁명렬사로 내세워주시였으며 그를 보살펴주시던 사랑과 정으로 그의 유가족을 따뜻이 돌봐주시였다.

진정 그 믿음, 그 은정은 통일적자주독립국가건설을 위한 민족대단합의 거목들을 푸르싱싱하게 자래워주는 은혜로운 태양의 빛발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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