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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세의 위인을 우러러

기타 | [인 입] 이 지구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나라의 대국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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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나무 작성일12-0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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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   입]

이 지구상에서 찾아 볼 수 없는 나라의 대국상

민족의 자애론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께서 너무도 갑자기 너무도 애석하게 서거하셨다는 청천벽력같은 비보에 접한 유태영 박사(6.15실천 미주동부지역 위원장)가  재미동포 방북조문단 대표로 지난달 24일부터 29일까지로 평양을 다녀왔다.
아래에 유씨의 방북소감 전문을  소개한다.
나와 리준무는 동행하여 12월 24에 평양에 도착했다. 평양 순안비행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29일 평양을 떠나올 때까지 줄곧 나의 머리와 가슴에 가득 차 있는 것은 이 지구의 인류역사상에 있어서 이런 나라는 전무후무하다는 생각뿐이었다.
나는 지난 2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조국방문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북에서 말하는 ‘동무와 동지’라는 그들의 단어에 대한 참된 동감을 느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에 북의 대국상 행사에 친히 참석하는 경험을 통하여 그들이 말하는 ‘동무와 동지’의 뜻에는 민족의식이 우선 강하고도 분명하게 포함되어 있고, 또 동무와 동지의 대상이 나라의 최고지도자들을 비롯하여 당과 정부와 국가의 일꾼, 대중들이 모두 다 함께 포함되어 혼연일체가 되고 있음을 직접 볼 수 있었다.
나는 1994년 김일성주석 서거 당시에도 범민련 미주위원회 양은식 위원장과 동행하여 이른바 ‘조문파동’을 경험한 바 있다. 하지만 그때는 매우 피상적으로 행사에만 참석하고 돌아온 것 같이 느껴진다.
왜 그런가? 그때 김일성주석의 갑작스러운 서거로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위태로운 상태에 빠져 있으면서 극히 불안한 상태에서 초상집의 모습을 띠고 있었기 때문이다.
김일성주석이 서거하자마자 자연재해까지 겹쳐 당하면서 북부 조국은 이른바 ‘고난의 행군’을 3-4년 동안이나 강행해야만 했다. 그야말로 구사일생의 위기 속에 온 나라가 빠져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국가적 생존의 위기 속에서 김정일국방위원장이 등장하여 민중의 동지로서 지도력을 발휘하여 군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외세의 위협에 간고히 대항하면서 핵 보유 강성대국을 창건한 눈물겨운 역사적 기적을 창조해 냈다.
이러한 역사적 생생한 경험 때문에 북녁의 동포들은 김정일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서거에 대하여 그렇게도 슬피 통곡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말 그대로 북녘동포들은 혼연일체라고 하는 사실을 서방에서 ‘허구와 거짓’이라고 선전하는데 대하여 일종의 역사적이며 현실적으로 증명이 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이번 북녘의 대국상 행사에 참가하여 친히 목도하고 돌아왔다.
계획한 영결식을 앞두고 함박눈이 펄펄 내리고 있었다. 이것을 평양 고려호텔 창문을 통하여 내다보면서 나는 하늘도 야속하다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평양시민들에게는 눈이 내리고 영하 10도를 오르내리는 차가운 날씨가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음날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운구차가 지나가게 될 길에 눈이 쌓이는 것을 염려한 대학생들을 비롯하여 평양 시민들은 남녀노소가 혼연일체가 되어 이불과 모포를 가지고 나와 아스팔트 길을 덮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불과 모포뿐만 아니라 목도리와 겉옷가지를 펴서 눈이 내리는 길을 덮고 있었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운구차가 지나갈 길에서 불과 몇 시간 전까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십만의 평양시민 군중들이 삽과 호미 심지어 빗자루와 막대기를 들고 나와 아스팔트 길에서 눈을 치고 얼음을 까고 있었다.
필자는 어느 한 여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왜 눈을 치고 얼음을 까고 있는가라고 질문했다. 그녀의 대답은 단호했다.
친애하는 김정일국방위원장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편안히 가시도록 하기 위함이다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눈물이 글썽이고 목이 메는 음성이었다. 나도 그녀의 모습에서 나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김일성주석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시대까지 일관된 조국사랑과 인민사랑의 통치이념은 ‘당·군·민 3위 일체’의 놀랍고도 아름다운 모습을 이번의 갑작스러운 대국상을 통하여 온 세상에 훤히 나타내 보여 주었다.
나는 이번 조문방문을 통하여 ‘잔칫집엔 가지 말고 초상집에 가라’라고 전해 내려오는 우리 속담의 참 뜻을 이해하게 됐다.
12월 28 영결식이 금수산기념궁전 광장에서 거행됐는데 약 10만의 군인들과 약 4만의 군중들이 3시간 정도를 끄떡 없이 서서 영결식에 참가하고 있는 것을 보고 그 진행과정과 군중들의 참가질서에 대하여 나는 완전히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것은 영결식이 끝난 후에 그 많은 군중들이 저마다 각자들이 타고 온 차를 타고 돌아가는 광경이었다. 때는 이미 해는 져서 어둠이 앞을 가리고 있었다. 내가 살고 있는 뉴욕의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러한 장소에 교통경찰은 최소한 50~60명 정도는 배치하여 교통정리를 해야만 할 것이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 복잡한 십수만명이 차를 기다리고 또 타고 있는데 교통정리를 하는 경찰이나 군인이나 민간인 봉사자는 한 사람도 없는 것이었다. 그 많은 차들 중에는 외교사절의 차와 승객들도 많이 있는데 그들에게도 주차와 통행에 아무 특권이 없는 듯했다.
그런데 더욱 더 놀라운 것은 빵빵 소리를 내는 운전수들이 한 사람도  없이 차들을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모습이었다. 나는 그때 또 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다라고 또 다시 생각하면서 우리 미주동포의 차를 타고 고려호텔로 왔다.
김정일국방위원장을 영결하는 그 슬픈 날에 마음과 눈에 피눈물의 바다를 이루고 있는 그 현장에서 서방세계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그 험상스러운 교통순경이나 헌병들의 모습 같은 것은 전혀 상상조차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나는 이번 북녘의 갑작스러운 대국상에 재미동포의 한 사람으로 참가하여 말로만 듣고 알고 있던 김정일국방위원장이 현지지도에서 ‘쪽잠, 줴기밥을 드셨다’라는 사실과 또 ‘핵무기보다 강한 일심단결’ 등의 구호와 이야기들에 대하여 실감으로 느끼고 충분히 이해하고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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